1877년 9월 일본 가고시마(鹿児島) 시로야마(城山). 메이지유신의 두 영웅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와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는 끝내 같은 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함께 에도막부를 무너뜨렸던 혁명의 동지는 서로 총을 겨누는 적이 됐고, 일본 마지막 내전인 세이난전쟁(西南戦争)은 메이지 정부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혁명을 함께 이룬 사람들이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결과였다.
역사는 흔히 이 대결을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충돌로 설명한다. 그러나 본질은 조금 다르다. 두 사람 모두 일본을 부강한 근대국가로 만들겠다는 목표는 같았다. 갈린 것은 목표가 아니라 국가를 만드는 순서였다.
사이고는 명분을 먼저 세우려 했고, 오쿠보는 국력을 먼저 키우려 했다. 사이고는 사람을 모으는 지도자였고, 오쿠보는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였다. 사이고가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혁명가였다면, 오쿠보는 새로운 국가의 제도와 기반을 세우는 건설자였다. 그는 재정을 정비하고 산업을 육성했으며, 근대 행정과 군대를 구축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일본이 짧은 기간 안에 서구 열강과 경쟁할 수 있는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데에는 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메이지유신은 근대국가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세력을 새로운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희생과 후유증을 남겼다. 이것이 150여 년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메이지유신이 우리에게 전하는 정치적 교훈이다.
이 교훈은 지금 한국 정치에도 적용된다. 다음 달 열리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단순한 당권 경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르는 집권당 지도부 선거다. 새 지도부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입법으로 뒷받침하고 내년도 예산을 책임지며, 2028년 총선까지 집권당을 이끌어야 한다. 이번 전당대회는 당 대표 한 사람을 선출하는 절차가 아니라 향후 국정 운영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다.
이재명 정부 앞에는 복잡하고 무거운 과제들이 놓여 있다. AI 국가전략과 반도체 경쟁력 강화, 첨단 제조업과 방위산업 육성, 에너지 전환, 지역균형발전, 저출생과 고령화 대응 등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과제들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미·중 전략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통상 질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하나같이 장기적인 추진력과 정치적 안정이 필요한 과제들이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도 법률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 예산 역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개혁 입법은 지체되고 예산은 표류하며, 국민이 체감할 정책 성과도 내기 어렵다. 반대로 집권당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 정책은 속도를 얻고 국정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집권당의 리더십은 단순한 당내 권력 문제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성패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번 전당대회를 개혁이냐 성장이냐, 강성이냐 온건이냐의 대결로만 바라봐서는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집권당은 야당처럼 투쟁만으로 존재할 수도 없고 정부처럼 행정만으로 평가받을 수도 없다. 개혁을 추진하는 힘과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책임감,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의 리더십을 함께 갖춰야 한다. 당내 경쟁은 필요하지만 경쟁의 목적은 상대를 배제하는 데 있지 않다. 더 나은 정책과 더 강한 집권 역량을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이미 국민에게 국정을 맡아 달라는 선택을 받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거의 승리를 국정의 성과로 바꾸는 일이다. 선거에서 함께했던 지지층만 바라봐서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어렵다. 당내 다른 목소리는 물론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의 우려까지 살피는 정치가 필요하다. 집권당의 통합은 계파 간 자리 배분에 머무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정부 정책 안에 담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메이지 정부가 강력한 중앙집권과 산업화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국가 목표와 추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상실과 분노를 충분히 감싸지 못하면서 결국 내전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개혁의 속도가 빠를수록 그 과정에서 뒤처지거나 배제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품는 정치가 함께 가야 한다. 추진력과 통합은 어느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함께 갖춰야 할 집권의 조건이다.
역사는 선거 결과보다 그 이후를 더 오래 기억한다. 메이지유신은 국가를 세우는 일과 국가를 하나로 만드는 일이 서로 다른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권력을 획득하는 능력과 권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능력도 같지 않다.
선거는 승자를 만든다. 그러나 집권은 승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를 품고 경쟁했던 사람들과 함께 국정을 이끌 때 비로소 국가는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150여 년이 지난 오늘, 메이지유신이 전하는 정치적 교훈이다. 집권은 승리가 아니라 통합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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