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칼럼]  로봇 경쟁의 무대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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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연구원 AI 연구실 연구위원]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6에는 역대 가장 많은 휴머노이드가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중국 로봇 기업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애지봇(智元机器人), 두봇(越疆科技), 엔진AI(众擎机器人), DEEP Robotics 등 여러 중국 기업이 로봇을 선보였다. 유니트리(Unitree·宇树科技)의 휴머노이드는 식빵과 채소를 집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2025년 1월 말, 중국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CCTV 춘절연환만회(春晚)에서 유니트리의 H1 16대가 사람들과 손수건을 돌리며 중국 전통 춤인 양거(秧歌)를 췄다. 그해 4월 베이징 이좡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21.0975㎞ 하프마라톤에 도전했다. 우승한 ‘톈궁 Ultra(天工Ultra)’의 기록은 2시간 40분 42초였다. 당시에는 사람의 안내가 필요한 반자율 방식이었다. 올해 톈궁 Ultra는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경로를 판단하며 완주했고, 기록도 1시간 15분까지 단축했다.

춤을 추던 로봇이 달리기를 거쳐 이제는 사람의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까지 왔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전시장에서 선보인 로봇을 곧바로 ‘일하는 로봇’의 시대로 치환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실제 산업현장에서 장시간 안정적으로 일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공장과 물류창고 등은 미리 설정한 조건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부품의 위치나 작업 순서가 달라질 수 있고, 작업 도중 사람이 로봇의 이동 경로에 들어오는 예외적인 경우가 반드시 생긴다. 정해진 동작만 정확하게 반복해서는 이런 변수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장시간 안정적으로 일하려면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적시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능력을 높이려면 실제 작업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산업현장 투입에 속도를 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난 6월, 중국의 공업정보화부와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체화지능 실경실훈 특별행동(人形机器人与具身智能实景实训专项行动)’을 시작했다. ‘실경실훈(实景实训)’은 실제 작업환경에서 로봇을 훈련하고 검증하는 방식이다. ‘체화지능(具身智能·embodied intelligence)’은 AI가 로봇과 같은 물리적 몸을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해 행동하는 능력을 뜻하는데 피지컬 AI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중국이 이 같은 정책을 통해 얻으려는 결과물은 아주 명확하다. 바로 실전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데이터다. 로봇이 물건을 집고 옮기는 동안에는 영상과 위치 정보뿐 아니라 운동 궤적, 힘의 조절, 관절의 움직임, 작업 순서 등 여러 종류의 정보가 동시에 만들어진다. 중국은 이를 모델과 알고리즘, 핵심 부품의 개선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말까지 100개 이상의 고가치 응용 시나리오를 발굴하고 ‘만 대급 규모의 현장 적용 능력’을 갖추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로봇이 투입되는 곳도 공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물류와 상업 서비스, 의료와 돌봄, 안전 생산, 긴급구조 등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공장에서 축적한 데이터만으로 병원이나 재난 현장에 대응하기 어렵다. 공간과 대상이 달라지면 필요한 판단과 동작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용 분야의 확대는 시장을 넓히는 동시에 서로 다른 작업환경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기반이 된다.

물론, 정책 목표를 현재의 기술 수준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만 대급’은 이미 그만큼의 로봇이 판매됐거나 산업현장에 배치됐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정도 규모로 확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장시간의 고부하 작업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과 열관리, 전력 소비, 충돌 감지와 긴급 제동 등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한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도 관련 투자가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휴머노이드 생태계 육성에 2030년까지 2조 3천억 원을 투입하고, 자율 제조·중소 제조·농업·건설·물류·항만·돌봄·국방 등 8대 분야의 실증에도 2조 8천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한, 2027년 한 해에만 500개가 넘는 현장에서 실증이 진행될 예정인데, 부처별로 흩어진 제조·피지컬 AI 데이터는 범정부 통합 라이브러리에 모아 클린룸 방식으로 국내 기업의 모델 학습에 제공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이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규모보다 실증 현장에서 어떤 데이터를 확보할 것인가이다. 이미 한국은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 배터리, 전자 등 유관 영역에서 오랜 생산 경험과 공정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이를 완성된 로봇의 성능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작업에서 나오는 영상과 위치 정보, 힘과 토크, 관절 움직임 등 학습용 데이터로 축적한다면 제조 기반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데이터의 양만 늘려서는 활용 범위에 한계가 생긴다. 공장마다 설비와 작업 방식이 다르고 기업마다 사용하는 로봇과 센서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같은 작업에서 나온 데이터라도 형식과 단위가 다르면 다른 현장이나 모델에 활용하기 어렵다. 모든 데이터를 하나의 형식으로 맞출 수는 없지만, 어떤 정보를 어떤 단위와 구조로 기록할지 최소한의 공통 기준은 필요하다. 기업의 기술과 영업비밀을 보호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활용할 장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생성형 AI 경쟁에서 연산 자원과 디지털 데이터가 중요했다면, 로봇과 AI가 결합하는 단계에서는 현실의 작업환경이 핵심 자원이다. 이런 변화는 제조업 기반이 두터운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중국은 강력한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로봇 개발과 현장 투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어 단기간에 그 속도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한국이 같은 방식으로 규모 경쟁에 나서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한국은 제조 현장의 강점을 살려 고도화된 실전 데이터를 차근차근 축적하고, 이를 기술 발전으로 연결하는 흐름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규모가 아니라 현장의 질과 축적의 깊이에서 경쟁력을 만들어야 할 때다.


필자 주요 이력

▲ 경기연구원 AI 연구실 연구위원 ▲ 한양대학교 전략정보학과 겸임 교수 ▲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 지방정부 특위 위원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해외기관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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