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인류 최초의 서사시(epic poem)로 고대 그리스 문학의 정수로 평가되는 오디세이아. 일리아스와 더불어 세계적 고전으로 회자하는 걸작이다. 트로이는 그리스의 에게해와 터키의 마르마라해를 잇는 다르다넬스 해협 입구 지역에 있던 무역의 요충지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고 전해진다.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Schliemann)의 유적지 발굴 작업을 통해서 트로이 전쟁의 실존이 밝혀졌다. 기원전 1200년경에 호전적인 그리스 연합군이 상업 부국인 트로이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트로이 전쟁은 10년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6세기경에 호메로스가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과 인간 등을 등장인물로 섞어 만든, 트로이 전쟁 이후를 그린 이 대서사시는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엮는 구성 방식, 현실과 허구의 공존,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등으로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아무리 문명이 발전하고 로봇이 일상화된 세상에서도 변치 않는 것인지 오디세이아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는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국내에서도 상영 후 석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천이백만 관객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왕비 헬레나를 트로이 왕자인 파리스에게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우스는 미케네의 왕이며 형인 아가멤논에게 트로이 공격을 요구한다.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그리스 이타카의 왕이었던 오디세우스도 부하들을 이끌고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이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서사로 엮어 내면서 그리스의 승전보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그리스의 맹장 아킬레우스는 전쟁에서 맹활약하지만,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아 죽게 되고 오디세우스의 속임수인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들인 트로이는 결국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작품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의 후속편 격으로 트로이 전쟁 승리 후 오디세우스의 이타카 귀향을 그린 서사시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12척의 배와 600여 명의 전우를 이끌고 이타카로 출발한다. 10년에 걸쳐 갖은 우여곡절 끝에 부하들은 모두 죽고 오디세우스 혼자만 살아남아 귀향하고 자신이 비운 왕의 자리를 노린 사람들을 모두 처치한다. 오디세우스는 작품에서 현명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많은 부하를 잃고 홀로 살아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어떤 면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국을 사랑하는 영웅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오만함에 실수도 하고 화를 자초하기도 하는 오디세우스. 인간적인 영웅, 완벽하지 않아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영웅인 오디세우스는 국내외적인 어려움을 풀어 나가 성공해야 하는 우리에게 문학작품의 재미를 넘어, 반면교사의 교훈이 되고 있다.
첫째, 오디세우스의 시련은 포세이돈(바다의 신)의 아들인 외눈박이 식인 거인 폴뤼페모스(폴리페모스)를 만나면서 비롯된다. 오디세우스의 오판이 문제의 발단이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폴뤼페모스의 동굴에 들어가 많은 치즈와 양들을 발견하였고 부하들은 빨리 물건을 챙기고 도망치자고 건의한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제우스식 환대(Xenia)를 바라면서 동굴에 머물다가 폴뤼페모스의 식인 만행을 겪게 되면서 폴뤼페모스의 외눈을 멀게 하고 동굴을 탈출한다. 폴뤼페모스의 아버지 포세이돈은 분노하면서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을 방해하면서 오디세우스를 1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방랑하게 만든다. 오디세우스도 후회하듯이 부하들 말대로 적절하게 동굴에서 빠져나왔다면 부하들이 전멸하고 10년을 떠도는 시련은 없었을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자제하지 않고 욕심을 낸 결과는 돌이키기 어렵다.
우리 경제는 중국 제조업의 강력한 추격 앞에 경쟁력을 잃을 위기를 맞고 있다. 반도체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국제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우려는 오래되었다. 반도체 등 일부 품목이 호황으로 자랑이지만 작년도 500억 달러에서 금년도 1000억 달러로 흑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미국의 견제에 노출되고 있고 얼마나 반도체 호황이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책적 노력을 다하고 노사가 전력투구해도 부족한 상황이다. 더 걷힐 세수로 조성되는 미래대응기금도 중요하다. 인재 양성과 전략기술 육성 등 4대 분야에 3분의 1 수준, 향후 중장기적인 재정수요를 위해 3분의 2가 사용될 계획이다. 미래 성장동력에 초과 세수를 사용하는 것은 경쟁국들이 반도체 등 중요산업과 인프라 구축에 재정을 투입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장기간 지출이 필요한 사업에 재원을 투입할 경우 세수 부족 등의 상황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둘째, 폴뤼페모스가 이름을 묻자 오디세우스는 꾀를 내어 “있지도 않은 자(outis)”라고 거짓 이름을 댄다. 나중에 동굴을 탈출하면서 오디세우스는 의기양양하여 부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의 이름은 오디세우스”라고 외치게 된다.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들은 폴뤼페모스가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간청하게 되면서 오디세우스의 험난한 여정은 시작된다.
오디세우스가 탈출 후에 자신의 본명을 외친 것은 부하들에 대한 자신의 체면 때문 아니었을까. “내 이름은 있지도 않은 자”라고 둘러대면서 위기를 모면한 모습이 부끄러워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본명을 드러내는 호기를 부린 것은 아닐까. 강대국들이 각축하는 국제 정치외교의 마당에서 실리적으로 판단하고 분노를 숨기고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미·중 양강의 경쟁체제에서 미국은 한국의 대중 스탠스에 대해 우려하면서 역차별을 얘기하고 한국에 대해 군사·외교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도 압박을 높이고 있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귀를 막으면 들리지 않겠지만 오디세우스가 밧줄로 몸을 묶고 세이렌을 듣는 것처럼 우리를 향한 미국 등의 목소리도 제대로 들을 필요가 있다. 그들의 요구를 외면하기보다 듣고 나서 분별하고 처리하면 되는 것은 아닐까. 국내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순간도 있겠지만 속으로 억누르면서 철저히 로우키(low key)로 나가야 할 때가 있다고 본다.
셋째,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에게 고향으로 가는 순풍을 약속하면서 방해가 되는 폭풍들을 넣은 자루를 선물로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폭풍 자루를 열지 말라는 아이올로스의 당부를 전하지 않고 잠들게 된다. 보물 자루로 의심한 전우들이 자루를 열면서 폭풍들이 풀려나왔고, 오디세우스 일행은 고향 이타카 바로 앞까지 갔다가 다시 먼 바다로 튕겨 나갔다. 스킬라와 카륍디스에서는 선박에 치명타를 입히는 괴물 카륍디스와 머리 여섯 달린 스킬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고민 끝에 부하 여섯을 희생하는 길을 택한다. 리더로서의 현실적 선택이겠지만 부하들의 목숨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판도 있다.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특례 허용에 대한 찬반이 대립하고 있다. 업계는 특례 허용을 요구하는 반면 노동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산업부와 노동부 간 입장의 차이도 전해진다. 진퇴양난의 어려운 문제이지만 더 큰 이익을 위해 과감한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농지전수 조사 등에 반발하는 농심이 거세지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CPTPP 가입은 연말까지 설득 과정을 거친 후 재추진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고심 끝에 내린 정책 결정으로 올바른 선택으로 평가한다. 경제적 위상과 지정학적 위치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한국.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멀고 먼 이타카로의 귀향이 험난했듯이 경쟁국들의 견제 속에서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우리 경제는 여러 대안을 합리적으로 검토하고 반대의 목소리까지도 경청하면서 차근차근 나아가야 비로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케이더블유 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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