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민용 주택 공급을 위해 오는 2020년까지 분당신도시 면적의 16배(308㎢)에 달하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기로 했지만 해제 유력지역의 분위기는 의외로 잠잠하다.
수도권에서 그린벨트 해제 유망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경기 과천ㆍ하남ㆍ성남ㆍ의왕ㆍ고양ㆍ광명시 등지다. 서울에서는 강남구 수서ㆍ세곡ㆍ내곡동, 은평구 수색ㆍ진관동 등지의 그린벨트가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이들 지역의 부동산시장에서는 추측만 난무할 뿐 거래는 물론 전화문의마저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데다 내년 2분기는 돼야 구체적인 해제지역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상에 대한 기대감과 투자전망이 예전만 못한 것도 그린벨트 해제 소식에 시장이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그린벨트 해제지를 서민용 보금자리주택단지나 산업 전용단지 등으로 활용할 방침인 정부는 개발이익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보상가격 산정 시점을 '지구 지정일'에서 '주민공람 공고일'로 앞당기고 개발을 공공에 맡길 계획이다.
◆강남구-과천시…시세·호가 '올 스톱' 썰렁한 시장
수서역에서 밤고개길을 이용해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동쪽)에 율현동, 오른쪽(서쪽)으로는 자곡동과 세곡동이 나타난다. 그리고 세곡동 사거리에서 서쪽으로 방향(헌릉로)을 잡고 계속해서 가면 내곡동이다.
이 지역은 서울의 핵심인 강남ㆍ서초구에 속하지만 대부분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곳이다. 그러나 6일 둘러본 이 곳은 예상외로 조용하기만 했다.
세곡동 K공인 대표는 "해제 얘기가 나오면서 이 일대의 그린벨트 토지 가격이 폭등한 것처럼 일부 언론에서 얘기하고 있는 모양"이라며 "그러나 실상은 너무나도 조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팔아달라는 것도 없고 시세는 물론, 호가 변동도 사실상 없다"고 덧붙였다.
인근의 S공인 관계자는 "하루 한 두건 정도 전화가 오는 정도이지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면서 "문의 전화도 대부분 소유주들이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지 투자문의는 드물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그린벨트가 풀리더라도 세곡2지구 쪽은 높은 산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린벨트가 해제돼도 낮은 토지 보상가와 높은 양도소득세 부담 탓에 소위 '대박'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개업소 대표는 "그린벨트가 풀리면 마치 대박을 맞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양도세 등 이것저것 따져보면 쉽게 볼 일이 아니다"면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개발하게 되면 토지를 수용하게 될 텐데, 그 때 적용되는 보상기준은 공시지가이고 양도세가 60% 중과세되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얼마나 남는 장사를 하게 될 지 쉽지 않은 계산이 나온다"며 시장이 조용한 까닭을 설명했다.
그는 동남권유통단지 건설이 일부 지역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율현동은 거래는 없지만 보상 때문에 복잡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언질을 주기도 했다.
과천시 일대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지하철 4호선 연장선(안산선) 선바위역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이 곳은 과천동 주암동 우면동 일대를 포함하는 거대한 비닐하우스촌을 형성하고 있다.
농원에서 작업중이던 50대 주민은 요즘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발표 이후 거래가 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별다른 움직임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말했다.
일부 지주들이 보상을 대비해서 귀농한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이 곳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영농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100%가 임차인으로, 오히려 자신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시름을 털어놨다.
과천시의 경우 현재 그린벨트는 33㎢로 과천동 같은 경우 대부분 묶여 있는 상황이다.
◆은평구-뉴타운이 대세, 그린벨트 해제엔 시큰둥
은평뉴타운과 수색ㆍ증산 뉴타운 등 지역 현안사업이 한창인 은평구에서는 그린벨트 해제는 남의 얘기다.
은평구에서는 현재 2건의 뉴타운사업과 갈현1ㆍ2동, 신사1ㆍ2동, 수색동, 응암1ㆍ2동, 녹번동, 불관1동 등지에서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부동산시장의 관심은 온통 이들 지역 사업에 쏠려 있다.
수색동의 M공인 대표는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한 움직임은 전혀 없다"며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은평 및 수색ㆍ증산뉴타운에 몰려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은평구가 그린벨트 해제 유력지역으로 꼽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동산경기가 워낙 침체돼 이 지역 아파트 시세는 지난해 말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구 전체면적의 53%가 대개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린벨트가 대개 외곽지역에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는 것도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고 있다. 은평구에서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은 진관동 9.12㎢를 비롯해 녹번동 0.52㎢, 불광1ㆍ2ㆍ3동 3.55㎢, 갈현1ㆍ2동 0.45㎢, 구산동 0.46㎢, 역촌2동 0.20㎢, 신사1ㆍ2동 0.51㎢, 수색동 0.40㎢ 등 모두 15.21㎢이다.
신사동의 O공인 대표는 "그린벨트지역이 북한산 인근에 드문드문 있어 활용도가 낮은 편"이라며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 저렴한 주택을 짓는다고 하자 '기다리자'는 심리가 발동해 오히려 주택거래가 더 뜸해졌다"고 말했다.
진관동의 S공인 관계자도 "은평뉴타운 거래는 꾸준하지만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한 문의는 한건도 들어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토지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중개업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며 "은평구 일대가 실제 그린벨트 해제지역으로 지정되더라도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토지 보상액이 크지도 않을 뿐더러 서민 주택단지로 개발되는 것이어서 투자가치가 낮다는 이유에서다.
작은 면적의 그린벨트가 산재해 있는 만큼 은평구 내 그린벨트만으로는 정부가 밝힌 그린벨트 해제 기준(20만㎡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인근 지역과 연계해 해제하면 가능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와 관련 수색동의 E공인 관계자는 "은평구보다는 고양시 덕양구의 용두리와 향동리 일대의 그린벨트지역이 지난해 말부터 각광받고 있다"며 "올 들어 보니 물류창고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촌이 대거 형성됐다"고 전했다. 그는 "위치 등에 따라 다르지만 최근 이 지역 땅값은 3.3㎡당 200만원선에 이르렀다"며 "하지만 이미 도로변의 쓸만한 땅은 다 거래돼 살만한 땅은 남아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남시-물량 넘치는데 그린벨트 풀고 집 짓는다고?
하남시는 서울 강동ㆍ송파구와 접해 있는 데다 시 전체 면적(93.07㎢)의 85%가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지역 부동산시장에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일부 지주들이 내놨던 땅을 최근 거둬들이고는 있지만 그린벨트 해제 기대감과는 무관하다는 게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강제 토지 수용으로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지주들 사이에 팽배해 있지만 거래는 좀체 이뤄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회수하는 매물들이라는 것이다.
현재 하남시의 전ㆍ답 시세는 ▲그린벨트 지역 내 전ㆍ답 도로변 150만~300만원, 일반대지 150만~200만원(상한선 기준) ▲지난 2006년 우선해제된 그린벨트 전ㆍ답 350만~600만원 ▲그린벨트 지역 외 일반 대지 800만~1000만원 등이다.
이와 관련 풍산동 A공인 대표는 "현재 시세는 이미 오를 데로 오른 것"이라면서 "지금 투자해봐야 더 오르지도 않을 뿐더러 산 가격만큼 보상을 못받을 게 뻔한데 누가 투자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신장동 B공인 관계자도 "토지뿐만 아니라 아파트 매수문의도 뚝 끊겼다"며 "최근 잠실, 강동 롯데캐슬과 풍산택지개발지구의 입주가 맞물리면서 하남시에는 잔여물량이 넘쳐 매매 시세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잔여물량들이 해소되기까지는 상당기간 걸릴 것으로 보여 하남시의 아파트값 하락세는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기존 아파트 시세는 신한아파트 108㎡의 경우 연초 대비 1억원 하락한 3억4000만원(호가기준)선이며, 은행아파트 158.4㎡는 연초보다 1억7000만원 하락한 4억7000만원선에 매물이 나와 있다.
그린벨트 해제가 지역 부동산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풍산동 C공인 관계자는 "하남시는 현재 그린벨트 해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매수세가 살아나기 위해선 외지인들의 토지매입 규제가 완화돼야 하고, 잠실 등 인근 지역의 잔여물량이 해소돼야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풍산지구에 공급된 6000가구로도 지역 부동산시장이 휘청이는데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주택공급이 이뤄진다면 자칫 공급과잉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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