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통합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ㆍ중ㆍ일 정상회담에서도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구체화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아시아 중심 외교를 천명하고 나서다. 미국 의존 외교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눈을 돌린 하토야마는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는 동아시아의 통합 수위를 유럽연합(EU)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10년 안에 아시아 공동통화를 도입하겠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통합을 이루기까지는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한ㆍ중ㆍ일 3국을 중심으로 최근 10여년 동안 논의됐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아시아 공동통화에 대한 논의 역시 2006년 한ㆍ중ㆍ일 재무장관회의에서 논의된 바 있지만 지난해 불거진 금융위기로 논의가 중단됐다.
이런 시점에서 반세기만에 완벽한 통합을 이룬 유럽은 동아시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체코는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마지막으로 리스본조약을 비준했다. 이로써 유럽은 경제에 이어 정치 통합마저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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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겐 뵐러 한독상공회의소 사무총장(왼쪽)과 박정규 아주경제신문 편집국장이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아주경제신문은 12일 유르겐 뵐러(Juergen O. Woehler) 한독상공회의소(KGCCI) 사무총장을 만나 유럽 통합 과정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주요 외교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통합이라는 기치 아래 반세기 동안 논의를 거듭하면서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유럽이 유로화를 도입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주시죠.
"유럽은 점증적인 방식으로 통합을 준비했고 지금은 27개 회원국이 유럽연합(EU)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통합 논의는 1953년 처음 시작됐습니다.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CCㆍ European Economic Community)가 설립되면서 논의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됐죠.
하지만 각국의 물가와 통화정책이 제각각이어서 유로화 도입은 쉬운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독일의 통화정책은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이어서 마르크화에 대한 평가절상 압박이 컸습니다. 반대로 물가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탈리아의 리라화에 대해서는 평가절하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어려움은 컸지만 유럽으로선 단일통화 도입이 절실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 경제에서 역내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기 때문입니다. 통화의 안정성을 높이는 게 지상 과제가 됐던 겁니다.
공동의 관심사는 단일통화에 대한 필요성을 불러 일으켰고 각국 정부는 유로화 도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유럽은 제일 먼저 통화조약(currency pact)을 맺고 1994년 통화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통화위원회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모태가 됐죠.
위원회는 수년간 개별 통화의 환율 변동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마련해 단일통화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했습니다. 그 결과 환율 변동폭이 점차 줄기 시작하면서 단일통화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위원회는 유로화를 국가 통화로 도입하는 데 필요한 규정을 마련해 이에 적합한 회원국을 선별했습니다.
현재 유럽 16개국이 사용하는 유로화는 위원회가 명확한 규정을 세워 이를 엄격하게 실행에 옮긴 덕분에 매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단일통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동아시아 공동체가 실현된다면 오히려 EU보다 쉽게 단일통화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심축인 한국과 중국, 일본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통화스왑을 체결했고 서로의 통화정책에 대해서도 상당한 공감대를 이룬 상태입니다.
또 한ㆍ중ㆍ일 3국의 통화는 미국 달러화에 연동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외환시장 변화에 비슷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각 통화간 환율 변동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죠.
상호 교역규모도 상당히 커 단일통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넓습니다.
문제는 단일통화를 도입하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라는 정치적 특성 탓에 자국 통화에 미치는 외부 영향력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하토야마 총리 역시 보수적인 일본 여론을 거스르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대통령이나 재무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기 때문에 단일통화에 대한 의지가 강해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월 한ㆍ중ㆍ일 3국 정상들이 중국 베이징에 모여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실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며 공동체 건설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ㆍ중ㆍ일 3국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 나라는 지리ㆍ문화ㆍ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교류도 활발합니다. 하지만 통합에 대한 의지나 노력은 전무해 보입니다. 정치나 역사적 사안에 대한 인식의 차이 또한 통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잘 아시겠지만 역사 논쟁에 대해서는 유럽도 예외가 아닙니다. 수백년 동안 앙숙 관계로 지내온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 문제로 여전히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국은 경제적 필요성과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믿음을 쌓았고 경제ㆍ문화적 통합을 위한 논의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가 간 신뢰를 쌓는 데는 경제적 공감대를 찾는 것만큼 손쉬운 방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경제가 중심이 되는 통합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도 초기에는 통합 범위를 경제로 제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합 범위를 경제 이외의 분야로 확대하다보면 논의가 겉돌게 될 공산이 큽니다. 독도나 과거사처럼 민감한 사안을 두고 허송세월을 보내기보다 단기간에 효과를 낼 수 있는 경제나 환경 문제를 먼저 통합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특히 한국은 분열된 한국사회를 통합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비단 북한과의 분단뿐 한국은 내부 갈등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역사교과서를 예로 들어보죠. 한국은 일본과 역사 문제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자국 역사교과서의 논조에 대한 합의마저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내부 통합이라는 숙제를 먼저 끝낸 후 주변국과의 공동체 구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일은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이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지난 지금 동독의 상황과 통일 독일에 대해 한말씀 해 주시죠.
"일부 옛 동독 주민들은 구체제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지난 20년간 새로운 체제에 익숙해졌지만 기성세대가 과거를 떠올리며 향수에 젖듯 공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실제 생활 환경이나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아무도 '옛날이 더 나았다'라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통일 이전 동독에 있던 산업시설들은 대부분 가동을 멈췄고 경제는 크게 낙후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통일 이후 서독의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기반시설들이 속속 세워졌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습니다.
물론 통일 이후 동독에 대한 투자가 기대만큼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젊은이들이 대거 서독으로 이주하면서 동독의 경제 활동이 기대만큼 활성화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에너지 및 공공시설이 과도하게 세워지는 등 비효율적인 측면이 크다는 비판 여론도 적지 않습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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