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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슨볕 등에 지고 유마경(維摩經)을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어 꽃밑 글자 읽어 무삼하리오.
만해 한용운의 춘서(春書). 따뜻한 봄날의 여운을 만끽하며 책을 읽는데 꽃 한 송이가 날아와 글자를 덮는다. 그래도 굳이 꽃을 치우지 않는다. 유마경의 깨달음이 바람에 날린 꽃잎처럼 완성되는 순간이다.
만해의 이 시조처럼 매사의 진리는 간명하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온갖 이론을 갖다 대는 것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한마디가 갖는 여백과 직관의 빛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이것이 바로 ‘은유의 미학’이다.
시인이자 경제신문 기자이기도 한 저자 고두현은 ‘옛시읽는 CEO’라는 책을 통해 살아 숨 쉬는 듯 묵향을 풍기는 옛시가 지니는 가치와 매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는 CEO의 기업경영에 있어 상대의 마음을 ‘탁’하고 칠 수 있는 비유와 응축의 미학을 전한다.
포부와 전략도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모두 담아
후진타오 주석은 2006년 방미 당시 부시대통령과의 오찬에서 700년대를 살다간 옛 시인 두보의 ‘태산을 바라보며’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했다. ‘언젠가 반드시 저 꼭대기에 올라 소소한 뭇 산을 한번 굽어보리라.’
저자는 이를 두고 미-중 양국이 태산에 함께 올라 온 세상을 굽어보자는 ‘윈윈 전략’ 혹은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를 가리키는 용어인 팍스 시니카(Pax Sinica). 즉 언젠가는 태산에 올라 미국을 내려다보고야 말겠다는 중국 주석의 각오가 담긴 말로 풀이한다.
긍정의 힘이 통찰의 힘이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에 사는 몸
풍족하나 부족하나 그대로 즐겁거늘
하하 크게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술잔을 들며’다. 달팽이는 머리 위에 두 개의 촉수를 갖고 있다. 한 몸에 난 촉수끼리 싸우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걱정으로 마음을 졸일 때 이 시를 암송하며 용기를 냈다고 한다. 눈앞의 작은 분쟁을 경계하고 호방하게 큰일을 도모하는 것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정 회장은 생전에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부하직원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불가능하다고 보고하면 “해봤어?”라는 말 한마디로 ‘부정의 싹’을 잘라버렸다.
저자는 엄동설한에 유엔군의 묘지에 푸른 잔디를 깔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정 회장이 며칠 뒤 낙동강변의 보리를 묘지로 옮겨 심은 일화를 들며 긍정의 힘이야말로 통찰의 힘을 일궈내는 뿌리가 된다고 설명한다.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당대의 가업을 일군 정 회장이야말로 ‘부싯돌 번쩍하듯 찰나’의 삶에서도 ‘달팽이의 두 뿔’을 아우르는 긍정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아주경제= 정진희 기자 snowwa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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