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경기전망이 갈수록 밝아지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특히 올해 매출과 순이익이 두자릿수 증가세를 기록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체감경기가 한동안 경기침체 수준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 고용시장이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남유럽발 금융위기설도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 일부 국가의 재정이 크게 악화되면서 지난주 뉴욕증시 다우지수는 심리적 지지선인 1만선 아래로 추락했다. 미국 상업부동산시장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기업들의 낙관적인 경기전망과 달리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소비시장의 수요가 2008년 리먼브라더스 붕괴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정론화된 지도 오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적잖은 기업들이 섣불리 공세전환하기보다는 비용절감과 저가공세 등 기존의 수세적인 경영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비용을 줄이고 저가정책을 이어가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차별적인 요소가 반영되지 않는 한 경쟁사보다 나아질 게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공과대학인 폴리테크니코의 로베르토 베르간티 혁신디자인학 교수는 특히 저가정책을 문제 삼는다. 기업들이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취하고 있는 저가공세는 경제적 보상에만 치중한 나머지 소비자들이 제품 구입을 통해 얻고자 하는 사회·심리적 보상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들은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저렴한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지만 결코 싸 보이는 제품을 갖고 싶어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베르간티 교수는 최근 세계적인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운영하는 블로그(blogs.harvardbusiness.org)에서 기업들이 제품개발 비용을 줄일 때 소비자가 원하는 사회ㆍ심리적 가치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 피아트의 '판다(Panda)'가 좋은 예다. 그는 판다에 대해 "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격을 낮춰 승부를 본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판다는 1970년대 오일쇼크로 전 세계 자동차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등장한 도시형 자동차다.
이 모델은 "둔탁하지만 스릴 넘치는(no frills, big thrills)" 실용차라는 이미지로 유럽뿐 아니라 남미시장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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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형 피아트 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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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뒷 자리의 두 좌석을 모두 떼내 앞 좌석 밑바닥에 넣으면 커다란 짐을 싣기에 충분한 공간이 확보된다.
실용성을 강조한 판다의 디자인은 자동차 조립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소비자들 역시 판다의 저렴한 가격보다는 혁신적인 디자인에 더 열광했다.
피아트가 당시 시장을 분석한 결과 판다를 구매할 때 가격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소비자는 전체의 38%에 불과했다. 나머지 소비자는 대개 저렴한 가격보다는 이 모델이 추구하는 '작으면서 강한 차'라는 이미지를 높이 샀다.
실제로 판다는 도시적인 감각의 디자인과 눈길 등 다양한 험로를 달릴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스키어들 사이에서 레wj용 패밀리 카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또 실용성이라는 가치를 강조한 디자인은 판다 모델의 장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베르간티 교수는 일반적인 소형차의 디자인 수명은 평균 8.5년인 데 반해 1980년 첫 출시된 판다의 디자인은 2003년까지 23년간 외형상 큰 변화 없이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고 극찬했다.
그는 판다가 장기간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에게 경제적 보상은 물론 사회ㆍ심리적 보상을 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똑똑한 디자인으로 가격은 낮추되 판다 특유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주력하며 소비자들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베르간티 교수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와 스위스 시계 메이커 '스와치', 인터넷전화업체인 '스카이프' 등을 저렴한 가격에 새 가치를 더해 성공한 브랜드로 꼽았다.
그는 이케아의 경우 싸지만 현대적이고 깔끔한 디자인이 주효했으며 스와치는 시계의 개념을 패션 아이템으로 새롭게 정의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스카이프는 무료이면서도 영상통화, 채팅, 파일공유 등 멀티미디어까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공짜 이미지를 희석시켰다고 설명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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