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
과거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대선 후보의 공약(公約)으로 등장하더니 ‘반값 등록금’ 공약을 거쳐 급기야 다가오는 교육감 선거에서는 ‘학교 무료급식’ 공약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이런 공약을 내거는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지만, 이런 공약이야말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공약(空約)이다. 이것이 공약(空約)인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재원을 국민으로부터 걷어야만 하는 교육감이 무슨 돈으로 무료 급식을 한단 말인가.
무료 급식을 위해 필요한 돈은 반드시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추가로 나와야 한다.
자신들의 자식을 위한 밥값을 국민들 각자가 스스로 지불하느냐, 아니면 일단 교육감에게 건네주고 교육감이 지불하도록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국민이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한 치의 변함이 없다.
내 돈을 교육감에게 건네주고 지불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줄줄 새는 돈은 차치하고라도 어차피 국민들이 지불하게 돼 있다는 말이다.
남의 돈 갖고 폼 잡고 생색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포퓰리즘에 기대는 정치인들과 정부다.
만일 무료 급식 명목으로 국민에게 추가부담을 지우지 않는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교육 예산은 한정돼 있고, 교육 현장에는 무료 급식 말고도 해결해야 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무료 급식에도 불구하고 추가부담이 없다고 한다면 무료 급식 이외의 다른 교육사업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로 인한 열악한 교육환경, 질 낮은 교육은 곧 학생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며, 이런 결과는 어떤 학부모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포퓰리스트들은 이 부분을 교묘하게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것만 떠벌리고 선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정책 사례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용여건 개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되고 있는 공공일자리 지원 프로젝트 ‘희망근로사업’이 대표적이다.
명목상으로는 많은 사람이 일거리를 갖게 되고 수입이 생기는 등 혜택을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눈앞의 달콤한 측면만 보여주는 것이다.
희망근로의 하루 일당은 평균 3만3000원이지만, 그 노동 강도가 여타 노동에 비해 매우 약하다. 임금 수준이 엇비슷하다면 굳이 어려운 노동을 택할 이유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당이 비슷하거나 낮은 분야, 예컨대 농어업 부문이나 도소매·음식숙박업은 사람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직원 채용을 위해 부득이 일당을 올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자연히 일당은 오르고 고용되는 인원은 줄어든다. 풍선의 입구를 막고 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포퓰리스트들이 폼 잡고 생색내는 이면(裏面)에서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
‘공짜’라는 마법의 지팡이는 알고 보면 보통 지팡이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공짜는 있다’는 식의 포퓰리즘 약속은 오늘도 여전히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들의 질주를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포퓰리즘의 끈질긴 생명력을 없앨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포퓰리즘을 이용하는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이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퓰리즘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은 그로 인해 일반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것의 몇 배 내지 몇 십배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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