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5일 저녁, 베트남 중부도시 다낭에서 열린 ‘미슐랭 가이드 2025’ 행사에서는 총 181개의 우수 레스토랑이 선정되며 베트남 F&B(식음료) 산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베트남 외식산업이 세계적인 미식 지도 위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지난 2023년 베트남 시장에 처음 진출한 이후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되는 베트남 레스토랑은 빠르게 늘어났다. 첫해에는 103개 레스토랑이 명단에 올랐고, 2024년에는 164개, 2025년에는 181개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레스토랑으로는 하노이의 '자(Gia)'와 '히바나 바이 코키(Hibana by Koki)', 호치민시의 '안안 사이공(Ănăn Saigon)', 다낭의 '라메종 1888(La Maison 1888)' 등이 있다. 이들 레스토랑은 고소득층 고객, 특히 고품질 미식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거 유입시키며 업계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F&B업계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솔루션 제공업체 iPOS.vn의 응우옌 타이 즈엉 마케팅 디렉터는 “미슐랭 가이드는 단순한 외식 리스트가 아니라, 베트남 소비자들의 식문화와 소비 행태를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iPOS.vn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2023년 베트남 소비자의 14.9%는 일상적인 저녁 식사에 10만동(약 5210원) 이상을 지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전년도보다 3.5배 증가한 것으로, 외식이 단순한 식사가 아닌 ‘삶의 질에 대한 투자’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미슐랭 효과'는 실제 수익 측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터컨티넨탈 다낭 선 페닌슐라 리조트의 셰이프 햄디 총지배인은 “소속 레스토랑 ‘라메종 1888’이 2024년 미슐랭 1스타를 받은 후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밝혔고, ‘히바나 바이 코키'의 리 응우옌 매니저도 “스타 획득 이후 예약 고객과 수익 모두 크게 증가했고, 국내외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미슐랭 효과'에 힘입어 베트남 음식의 세계적 인지도 역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11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베트남 음식 인플루언서 우옌당은 “미슐랭은 단지 고급 레스토랑 추천서가 아니라, 세계인이 베트남 음식의 매력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라며, “이를 통해 쌀국수, 분보후에 등 베트남 대표요리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미슐랭 효과'는 한국 기업의 베트남 외식시장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 베트남 방문 외국인 수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고 다낭, 하노이, 호치민 등지에서는 한류 문화와 한식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이에 CJ 등 한국 식품 및 외식 대기업은 프랜차이즈, 합작법인, 외식 솔루션 등을 통해 베트남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베트남 레스토랑의 조리법과 지역 식재료 활용 방식은 발효와 지역 재료 중심의 한식 조리법과 맞닿아 있어 양국 간 신제품 개발이나 공동 연구, 복합 레스토랑 등 다양한 협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지난 2023년 베트남 첫 미쉐린 가이드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하노이 '라브리(Labri)'의 지준혁 셰프는 본지에 "그동안 라브리에서는 프렌치를 베이스로 한 아시아 요리를 선보였는데 올해 8월부터 새롭게 준비하는 Onvit(온빛)은 베트남 최초 한식 파인다이닝 컨셉트로 하노이 그랜드 플라자 호텔 안에 입점해 한국인 셰프로서 더 적극적으로 한식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슐랭의 등장은 베트남 외식산업의 체질을 바꾸고 있으며 산업 고도화, 관광 자원화, 글로벌 투자 유치라는 복합적 효과를 실현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한식과 베트남 음식의 공통 기반을 바탕으로 F&B 분야에서 실질적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다만 지준혁 셰프는 "베트남이 미슐랭 가이드가 도입되고 나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싱가포르에서도 미슐랭 레스토랑 타이틀을 가져와서 레스토랑을 오픈할 정도로 가능성이 많은 시장이지만 베트남에서 베트남 직원들과 어울리며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며 "베트남에 대한 정확한 시장조사, 타깃 설정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큰 투자를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이라는 조언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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