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미국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가짜 '말보로' 담배를 판매한 소매업체 8곳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한 독일 은행은 최근 금고에서 텅스텐으로 만들어진 가짜 금괴를 발견했다.
태국 수도 방콕에서는 가짜 포르쉐와 페라리가 도로를 누비고 있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마저 짝퉁 원자재를 사들여 물의를 빚었다.
위조상품이 문제가 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짝퉁 제품의 확산속도와 침투력이 두드러지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6일자 최신호에서 기업과 각국 정부가 위조상품의 급속한 확산으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세관 위조상품 적발 실적 |
미국 세관ㆍ국경보호국(CBP) 지적재산권 부문 책임자인 테레스 렌다조는 "'일부 명품에 제한됐던 '위조' 문제가 이제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군용 장비 시스템에서 발견된 위조부품은 2005~2008년 사이 두 배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7년 전 세계에서 거래된 위조상품 교역액이 2500억 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국제반위조연합(IACC)은 OECD가 놓친 온라인 거래 등을 포함하면 같은해 위조상품 교역 규모가 전 세계 교역액의 5~7%인 6000억 달러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ㆍ경기침체 위조상품 확산 부추겨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몇 년 새 짝퉁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으로 인터넷과 유연해진 유통망, 경기침체 등을 꼽았다.
우선 인터넷은 지적재산권 보호가 취약한 국가에서 위조에 필요한 첨단 기술을 입수하는 통로가 됐다. 더불어 이베이(eBay)와 같은 온라인상의 오픈마켓은 위조상품을 사고 팔수 있는 장터로 기능하고 있다.
미국 브랜드 보호 컨설팅업체 마크모니터는 올해 인터넷에서 1350억 달러 어치의 위조상품이 거래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침체 역시 짝퉁 메이커들에게 호황을 가져다 줬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가격이 싼 위조상품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기업들의 비용절감 바람에 설자리를 잃은 납품업체들도 현금 마련을 위해 짝퉁 메이커로 거듭났다.
실제로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2008년 미국 세관의 위조상품 적발액수는 1년 전에 비해 무려 40%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해 유럽에서도 한 해 전보다 두 배나 많은 짝퉁제품이 몰수됐다.
◇기업들 위조방지 대책 골몰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어든 기업들에게 위조상품은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기업들은 손수 짝퉁제품 단속에 나서거나 위조방지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위조상품 근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례로 '루이비통'은 지난해 1년 전보다 31% 늘어난 9500건의 적발실적을 거뒀다. 같은해 기업들이 위조상품 제조업자나 유통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건수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위조 방지 기술도 나날이 첨단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제품에 홀로그램이나 투명무늬, 특수잉크를 사용하는가 하면 전자태그(RFID)를 붙여 제조ㆍ유통 과정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이보다 더 큰 비용을 감수하고 제품이나 포장에 고유의 유전자(DNA)를 삽입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위조 방지 기술 개발 업체들과 브랜드 보호 전문 컨설팅업체들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두자릿수 매출 증가세를 기록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세입 늘리자"…정부도 위조방지 안간힘
각국 정부 역시 위조상품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군용 장비마저 위조제품 영역으로 흡수되면서 정부 역시 피해자가 된 데다 짝퉁 메이커들은 탈세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유럽 경제 컨설팅업체 프런티어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에서 위조제품을 통해 새나가는 세금은 매년 85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위조를 막는 데 1 달러를 쓸 때마다 미 정부는 5 달러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며 정부에 위조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미 정부도 지적재산권 지키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미 무역대표부(USTR)에서 지적재산권을 담당했던 빅토리아 에스피넬을 최초의 'IP(지적재산) 차르'로 임명한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최근 위조제품 구입자에게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거나 심한 경우 인신구속까지 할 수 있도록 한 법안도 발효됐다.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 등은 국제사회의 위조 방지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반위조무역협정(ACTAㆍ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전 세계 짝퉁제품의 80%를 생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이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지 않는 한 국제 공조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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