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전 회장은 자신의 에세이집인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를 통해 리더의 덕목으로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을 꼽았다. 2008년 회장직 사퇴 이전까지 20년 동안 삼성을 이끌어온 이 전 회장의 이같은 리더의 덕목은 실제로 삼성 CEO의 조건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지도자로서 해박한 지박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그대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제대로 알고 스스로 솔선수범해야 밑에 조직원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으며, 이들의 행동을 평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知'는 단순히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전 회장은 "경영은 하나의 종합 예술"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리더에게는 전문분야 뿐 아니라 전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삼성 임직원들 가운데 자신의 사업분야 뿐 아니라 어학, 취미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인사를 찾아보기 쉽다. 이 전 회장 역시 자동차골프·레슬링·승마·애견 등 다방면에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전자산업 분야에 대한 지식은 그 이상이다.
1993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웨이퍼 크기를 세계 표준인 6인치가 아닌 8인치로 넓혔다. 그리고 이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 기업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숨겨진 1인치를 찾았다'는 광고로 유명한 '명품 플러스원' TV도 방송 원본의 일부가 화면에 나오지 않는 기존 TV의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다. 이를 시작으로 승승장구한 삼성 TV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세계 1위 신화를 창조했다. 그리고 이같은 아이디어와 결정은 모두 이 전 회장에서 비롯됐다.
'行' 역시 단순히 아는데 그치고 이를 행하지 않는 일반인을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조직원들에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스스로 행하지 않고 부하직원에게만 이를 강요하면 그 명령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경영 현황과 관련해 지시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직접 생산현장을 돌며 문제점을 찾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했다. 회장이 직접 나서자 계열사 CEO들도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이는 결국 임원부터 생산직 직원에 이르기까지 한발 더 움직이는 효과를 거뒀다.
삼성의 CEO라면 부하직원을 제대로 활용(用)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전 회장의 생각이다. 부족한 부분은 가르침(訓)을 통해 보완하는 것도 CEO의 몫이다. 부하 직원의 능력과 인성 등에 대한 평가(評)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리더는 부하직원을 제대로 이끄는 용인술을 갖출 수 있다.
특히 '用'과 '訓', '評'은 현재 뿐 아니라 미래 삼성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삼성의 신입사원들은 4주 이상의 합숙교육을 받는다. 이 기간 동안 이들은 관련업무는 물론 언행과 에티켓 등 소양교육을 받는다. 이같은 교육을 거쳐 이들 새내기들은 삼성맨의 자질을 갖추게 된다.
이후에도 교육은 계속된다. 각 계열사 별로 특성에 맞게 수개월 동안의 교육이 기다리고 있다. 학사 출신 직원들에게는 석·박사, MBA 등 다양한 기회가 제공된다. 삼성의 대표 인재육성 프로그램인 '지역전문가제도'도 가능성 있는 직원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한 교육의 한 방면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는 모든 직원들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총 11개 등급으로 세분화된 능력평가를 거쳐 높은 점수를 받은 직원들에게만 돌아가는 특혜다.
업무 분할도 평가에 따라 이뤄진다. 능력에 따라 업무의 경중이 갈린다. 직급이 낮아도 능력이 뛰어난 직원에게는 중요한 업무가 맡겨진다. 삼성에서 과장급에서 퇴사한 한 대기업 간부급 인사는 "삼성은 좋은 평가를 받는 직원에게는 커리어를 쌓을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연스럽게 뒤로 밀리게 된다"며 "대리 말년차부터 뛰어난 후배에게 내가 맡아야 할 역할이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지행용훈평'은 당장의 CEO 후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은 주니어 직원 시절부터 철저한 평가와 가르침, 업무경험 등응 통해 미래 CEO 재목을 키우고 있다.
아주경제 특별취재팀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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