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100 - 분양광고

[삼성시리즈 31] 이건희와 창조경영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0-03-19 08:47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삼성은 회계·재무·인재·사업진출 등 경영의 세부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관리가 이뤄지는 조직이다. 삼성의 이 같은 관리문화는 근대화 시절 튼튼한 기초를 다지면서 동시에 고속성장을 이뤄내는 원동력이 됐다.
 
삼성 출신 인재들이 타 기업의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는 것도 삼성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삼성의 문화는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부터 시작된다. 일본 재계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이 선대 회장은 일본의 철저한 관리문화를 영입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삼성의 ‘비서실’ 경영은 그 단적인 예다. 이 선대 회장은 ‘컨트롤타워’인 비서실을 통해 조직의 세부적인 면까지 관리할 수 있는 대본영 체제를 구축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삼성의 중요한 DNA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건희 전 회장 취임 이후 관리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국내 최고에서 세계 일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부집단만의 관리와 독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자각을 통해 이 전 회장은 ‘창조경영’의 기치를 세웠다.
 
이 전 회장은 “21세기는 단순히 상품만 만들어 파는 시대가 아니라 창의력과 아이디어, 정보를 모아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세대”라며 조직의 변혁을 주도했다.
 
2000년 이후 삼성의 제품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선두권에 진입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를 비롯해 TV·휴대폰·디스플레이·LCD·조선 등 다방면에서 이미 1위를 차지했거나 1위에 근접해있다.
 
때문에 더 이상 관리 위주의 경영만으로는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시장을 이끄는 리더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쫒아오고 일본은 여전히 앞서있다”는 이 전 회장의 ‘샌드위치론’도 이러한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계열사 관리를 통해 그룹의 역량을 모으는 방식은 일본 등 선진기업을 따라잡는데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삼성은 추격자가 아닌 창조자로 변모해야 한다는 게 이 전 회장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이 전 회장은 삼성 내 패거리 문화 철폐에 나섰다. 사내 향우회·동문회 등 사적인 모임을 엄격히 금했다. 국내 기업들의 병폐인 라인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이기태 전 부회장이 퇴진하면서 측근으로 분류됐던 나 역시 현직에서 물러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었다”며 “하지만 측근 인사 동반 퇴진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나를 포함해 측은 인력 상당수가 지금도 삼성전자의 주요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명하달 식의 조직문화도 사라졌다. LED TV 신화를 창조한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현재 삼성은 부하직원이 윗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화를 갖췄다”며 “나 역시 상사인 최지성 사장에게 잘못된 부분은 지적한다. 아래 직원들도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신경영 선언 이후 조직체계를 능동적으로 전환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결제체계는 단순화됐다. 팀을 이끄는 팀장과 팀원, 그리고 경영진으로 3분된 역할분담은 말단 직원이라 해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회사의 역점 사업에 선정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1990년대 중반삼성 계열사 사장은 물론 자신의 팩시밀리를 24시간 동안 개방해 현장 직원은 물론 협력업체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신문고’ 제도도 창조경영의 일환이었다. 이를 통해 이 전 회장은 현장의 문제를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했다. 이를 통해 경영에서 일어나는 폐단은 지체없이 고치고, 아이디어가 중간단계에서 소멸되는 사례도 줄일 수 있다.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하는 이 전 회장의 철학은 창조경영의 핵심이다. 외환위기 이후 이 전 회장은 사장단 회의 등을 통해 “정보의 공유, 실패사례를 기록하지 않으니 과거의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라며 “실패를 자산화해해 실패 경험을 좌우상하로 공유하면 굉장한 자산이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아울러 실패에 대해 관대한 문화도 마련했다. “실패와 창조는 물과 물고기처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지론에서 비롯됐다. 실패에 대한 책임추궁이 두려워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도전을 통해 성공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설령 실패를 한다 해도 이러한 도전의 과정을 통해 다음번에 더욱 큰 열매를 딸 수 있다는 것이 이 전회장의 믿음이다.
 
실제로 삼성에버랜드는 1996년부터 ‘실패 파티’를 열고 있다. 고객의 불평을 접수하거나 업무처리 과정에서 직원의 잘못이 확인될 때 밝은 분위기 속에 공유하기 위해서다. 이는 실패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것이다.
 
이 같은 창조경영을 위한 이 전 회장의 다양한 시도는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매출액 1170억 달러로 세계 1위 전자기업으로 우뚝 솟았다. HP·지멘스 등 굴지의 기업들을 추월한 것. 영업이익은 일본 주요 전자업체 10곳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과거 배움의 대상이었던 일본 기업과의 격차를 크게 벌인 것. 이는 새로운 새업을 향한 도전과 창조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삼성의 창조경영도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의 창조경영이 단지 제품의 질과 디자인, 기술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머물렀다는 우려다.
 
이는 ‘아이팟’을 중심으로 한 MP3 신화에 이어 아이폰·아이패드·아이TV로 사업범위를 빠르게 넓히고 있는 애플의 움직임 때문이다. 애플은 제품 위주의 전자제품 시장에서 소프트웨어를 앞세워 기존 주요 제조업체들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삼성 역시 애플의 도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삼성은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삼성 고유의 휴대폰 OS인 ‘바다’는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TV분야에서는 최초로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마련해 주요 개발자 확보에 나섰다. 애플의 창조경영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는 것.
 
최근 젊어지고 있는 문화 역시 제2의 창조경영을 기대하게 한다. 삼성 임직원 평균 나이는 32.8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평균연령을 낮춘 것은 아니다. 이 전 회장도 최근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젊은 직원들의 도전을 북돋아야 한다”며 ‘영 삼성’ 창조에 나섰다.
 
복장 및 출퇴근 자율화와 현장 중심의 스피드 경영, 온라인 소통 공간 확보, 사업장의 캠퍼스 문화 접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바람도 불고 있다.
 
삼성 계열사 한 임원은 “최근 삼성은 과거 다소 경직되고 철저한 관리에 의해 움직이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주요 외국계 IT 기업들처럼 자유로운 문화 속에서 거침없는 토론과 소통을 통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 최근 삼성의 모습”이라고 자신했다.

아주경제 특별취재팀 ehn@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