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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필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피존지점장/ 정치학 박사, 고려대 강사 |
개그패러디라기엔 너무 냉정한 현실이다.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사람, 처음 달에 착륙한 사람,
첫 번째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사람….
모두들 최초, 최대, 최고, 1등만 기억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렇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돋보인 우리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
특히 자신감(Confidence), 도전(Challenging mind), 협동(Collaboration)의
유전자로 뭉친 소위 영 파워 `3C세대‘의 활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만큼의 그늘도 생기는 것이 자연의 이치,
젊은 세대들의 쾌속 질주 스포트라이트 뒤로 우리는 세계선수권대회나 월드컵과 같은 각종국제대회에서 최강의 실력을 발휘하면서도 올림픽에서만은 유독 인연이 닿지 않았던 몇몇 선수들의 안타까운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스포츠가 감동적인 것은 꼭 1등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 1968년 10월 20일 멕시코 올림픽,
세계의 이목은 로마(‘60)와 도쿄올림픽(’64)에 연거푸 우승한 맨발의 아베베 비킬라 선수가 올림픽 3연패라는 금자탑을 이룰지에 대해 쏠려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연습 중에 당한 경골절 부상으로 중도에 경주를 포기했어야만 했고 영예의 월계관은 동료인 마데 올데 선수에게 돌아갔다.
우승자가 골인하고도 한참을 지나 어두움이 내리는 스타디움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흑인 선수 한 사람이 다리에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며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바퀴를 간신히 돌자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그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탄자니아 대표로 출전한 '존 스티븐 아쿠와리(John Stephen Akhwari)'였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큐멘터리 제작사 그린스펀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토록 심한 부상을 입고도 왜 완주를 고집한 겁니까?"
그는 고통 속에서도 신음처럼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
"내 조국은 내가 경주에서 출발하라고 이 먼 곳까지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경주를 완주하라고 이곳까지 나를 보낸 것입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대회에서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 선수는 ‘마의 구간’을 선두로 달리면서 우승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아일랜드 출신의 광신도로 알려진 관중 한명이 도로에 뛰어 들어와 역주하던 그를 밀치는 사고가 발생하여 리마 선수는 인도까지 밀려 넘어졌고, 다시 일어나 힘겨운 질주를 계속했으나 이미 무너진 페이스를 찾기에는 역부족.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여 양팔을 비행기날개처럼 펼치며 3위로 골인하여 쿠베르탱메달, 즉 페어플레이 메달을 받았던 그를 그해 우승한 월계관의 주인공보다 더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1920년 미국 여행보험사의 직원이었던 '허버트 하인리히'가 세웠다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은 대형사고 ‘한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이와 관련된 소형사고가 '29회' 발생하고, 소형사고 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사소한 징후들이 '300번' 나타난다는 일종의 통계에 근거한다.
그러나 '역 하인리히 법칙'을 가정해 보자.
농부가 300개의 씨앗을 땅에 뿌리면, 그중에서 29개의 건강한 싹이 돋아나오고, 이들 싹들 가운데 결국에는 '하나'의 탐스런 열매가 달리게 되는 것이다.
올림픽에서의 '88세대'들이 대형사고(?)를 치기까지는 이유 있는 전조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나무는 살아서, 그렇다고 죽어서도 스스로의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스포츠에서 ‘세리키즈’들이 있다면 기업이나 사회에도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는 소중한 밑거름들이 있다.
“언젠가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말없이 많은 것을 가슴에
쌓아 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니체의 독백처럼 누구에겐가, 무엇을 위해서
척박한 땅에 비를 만드는 구름 같은 존재라면
이미 당신은 우리들의 영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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