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나드러(Ruth Naderer) SC제일은행 커뮤니케이션본부 부행장
(아주경제 이정은 기자) "여성을 위한 혜택도 좋지만 그것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루스 나드러 부행장은 '여성'에 관한 질문에 답을 할 때마다 다부진 어조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우려했다. 그녀는 '여성리더'라기 보다는 전체를 아우를 줄 아는 '리더'로서의 면모를 더 가지고 있었다.
영국 출신인 나드러 부행장은 국내 은행권에서 최연소이자 유일한 여성 외국인 부행장으로 2008년 8월 한국에 부임했다. 18년째 은행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녀는 그 중 13년을 스탠다드 차타드(SC)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드러 부행장은 커리어의 70%를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등 아시아에서 근무한 ‘아시아통’으로 “아시아는 제2의 고향과 같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SC제일은행은 SC그룹 총 자산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현재 한국에선 7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지점망도 차타드 내에선 가장 큰 편에 속한다”며 “한국은 전체 SC그룹 중에서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한국에 부임하게 됐다고 한다.
금융인으로서 한국의 금융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한국 정부와 한국 감독 당국은 최근의 위기 사태를 굉장히 슬기롭게 극복한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은 금융위기 사태를 조기에 극복한 시장 중 하나로, 한국은 아시아 금융위기인 IMF 때 배운 점들을 잘 적용했기 때문에 이번 위기도 잘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또 나드러 부행장은 “한국이 동북아 허브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금융서비스업계의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올해 G20가 열리는 만큼 한국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전 세계 금융서비스업을 이끌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 졸업 후 영국 넷웨스트 은행의 은행 공채 프로그램 통해 입사한 후 고속승진을 했다.
고속 승진하는 과정에서 혹시 여성이기에 받는 차별은 없었을까. 혹시 ‘유리천장’을 겪어봤는지 조심스럽게 묻자 나드러 부행장은 그 단어를 쓰는 것조차 꺼려했다. 그는 유리천장이라기 보다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커리어 상 정체기가 있을 수 있다”며 “이런 정체기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동안 자신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고,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며, 필요하면 커리어를 바꾸는 등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돌려 답변했다.
나드러 부행장은 스탠다드 차타드에 입사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탠다드 차타드는 어느 기업보다도 다양성, 포용성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70여 개국 이상의 시장에 진출해 있는 스탠다드 차타드엔 152개 국적의 다양한 사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 전체 직원의 반이 여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 연령, 국적에 차별이 없으며 기회가 많은 직장이라고 덧붙였다. 대신, 성과급에 기반한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일을 잘할수록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또 그것이 어느 일자리에서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의 남성우월주의 문화를 보며 그런 사회적 단면은 서구의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 같은 경우 향후 10~20년 동안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며 “한국은 경제성장률 기대치가 높은 편인데, 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50%에 달하는 여성 노동인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 여성의 사회 진출 역시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SC제일은행은 탄력 근무제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출산한 직원들을 위한 보육 시설을 개설한 바 있다. 그러나 그녀는 '긍정적인 차별(positive discrimination)', 즉 남성들이 도리어 차별 받는 역차별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다시 경고하며 그렇기 때문에 성과급 문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별, 인종 등 여타 요소에 관계없이 성과만을 중시해야 한단 의미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특정성별이나 나이대나 문화에 있는 사람이 우월하지 않는 ‘공정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탄력근무제 시도나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 등 변화를 통해서 좀 더 다양한 직업군들(workforces)이 생성이 될 것"이라며 다양한 성별, 나이 대, 배경, 신념,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생성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견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리더들 간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유용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포용성'도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성 엘리트끼리만 만나면 남성들이 배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여성 임원들 간의 모임에 남성임원들도 꼭 초대를 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성별이 중요해지지 않는 그런 경지에 올라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 말대로 성별, 나이, 배경이 중요하지 않는 환경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환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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