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지성 기자) 꽃게철이다. 5~6월 꽃게철이면 산지에서 싱싱한 꽃게를 저렴하게 구하려는 도시민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한상린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최근 인천 소래포구에 내려가서 생산자에게서 직접 꽃게를 샀다.
트렁크에 꽃게를 싣고 오던 그는 문득 ‘과연 잘 산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유통전문가인 한 교수 생각에 산지까지 가는 시간, 소비된 기름 값, 운전하는 데 들어간 노동력 등을 고려하면 싸게 산 것 같지만은 않았다. 집 앞에 있는 이마트에서 사게 되면 물건 값은 산지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구매 편리성’의 측면에서 비용이 오히려 절감될 수도 있다.
한 교수는 소래포구의 경험을 “직거래가 가능해져도 유통은 필요하다”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난 19일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 ‘글로벌 CMO(Chief Marketing Officer) 스쿨’ 과정의 하나로 진행된 ‘유통전략’ 강의에서였다.
![]() |
||
한상린 교수가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에서 '유통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
한 교수는 이날 수강생들에게 유통의 개념부터 다시 설명했다. 유통이란 한자를 풀어보면 흐르고 통한다는 것이다. 즉 제품이나 서비스가 흘러가는 과정, 길을 의미한다.
연장선상에서 유통은 소비자에게 좋고, 제조업체에도 좋은 것이다.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들을 대신해서 경쟁적으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편리하게 구매를 할 수 있다. 또 전국에 산재해 있는 유통업체들이 제조사의 재고를 일정부분 안고 있어서 제조사들의 부담도 줄여주게 된다.
한 교수는 유통이 필요한 이유를 ‘시간효용’과 ‘장소효용’의 제공이란 측면에서 설명했다. 구매자가 원하는 시간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시간효용이다. 예를 들어 새벽 3시에도 편의점이라는 유통점이 있어서 우리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장소효용은 구매자가 원하는 곳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편의점이 ‘집 앞에’ 있어서 새벽 3시에도 우리는 역시 라면을 살 수 있다.
물론 유통의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유통경로가 오히려 복잡해 거래비용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농산물이다. 일부 농산물의 경우 유통경로가 너무 복잡하게 돼 있어, 생산지에서 직접 구매하는 ‘직거래’ 방식이 선호된다. 유통단계의 복잡화로 늘어난 거래비용이, 유통이 주는 편의성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다단계방식의 농산물 유통이 인터넷 등을 이용한 직거래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유통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한 교수는 유통변화의 예로 양판점과 할인점의 등장을 제시했다. 국내 가전제품의 유통경로를 살펴보면 과거 10여년 전만해도 대리점이 거의 전부였으나 이후 양판점과 할인점이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이후에는 무점포 유통(홈쇼핑, 인터넷)도 나왔다. 제조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유통망의 등장으로 유통망을 관리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한 교수는 유통업태의 구분을 제품 구색의 라인(넓이)과 깊이로 설명했다. 이를테면 슈퍼마켓은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많이 또 종류별로 구비하고 있는 편이다. 이에 비해 전문점이나 대리점은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브랜드의 선택폭은 좁지만 특정 브랜드내에서 선택의 깊이를 제공한다는 식이다.
다양한 종류의 제품과 다양한 브랜드를 깊이 있게 구비한 대표적인 업태는 백화점이다. 문자 그대로 백화(百貨), 모든 제품을 구비한 유통업태이다. 국내에서도 근대 유통업의 출현과 맞물려 지난 2002년까지 최대의 유통채널로 명성을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백화점이 고민에 빠졌다. 할인점의 가파른 성장 때문이다.
한 교수는 “백화점 업계 자체가 성장이 안 되다 보니 지방, 중소 백화점이 통폐합 되거나 없어지고 있다”면서 "롯데 신세계 현대 빅3로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미국, 유럽 등에서 일치감치 시작됐다. 1970년대부터 할인점의 등장과 함께 백화점이 퇴조한 것. 현재 미국만 해도 패션, 의류 중심의 고급 백화점들이 살아남아 있는 형국이다. 한 교수는 “라인이 좁아진 대신 고급화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이 변화를 모색하게 만든 것이 할인점이다. 할인점은 현재 국내 최대 유통업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매출규모만 30.7조원으로 성장했다.
한 교수는 “할인점이 구매원가를 줄인 유통점이라는 점에서 가장 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유통업”이라고 설명했다.
할인점의 성장은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세계 최대의 할인점인 월마트는 지난해 약 4300억 달러로 유통업계를 넘어서 전 세계 모든 기업 중 가장 매출이 큰 기업이 됐다. 창업자인 새무엘 월튼이 1960년대 초에 조그마한 잡화점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50여년 만에 상전벽해가 일어났다고 할 만하다.
한 교수는 “월마트에 입점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제조사의 글로벌 판매가 좌우된다”며 “유통업계에서 월마트를 ‘황제’라고 부를 정도로 월마트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설명했다.
이 말속에는 제조업을 견인하는 신성장동력으로서의 ‘유통’에 대한 이해가 담겨져 있다. 과거 유통업은 제조사들이 판매 확대를 위한 방편으로 활용됐지만 21세기의 유통은 제조업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이 시대 CEO들이 유통업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lazyhand@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