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미호 기자) "10년이 지나도 전혀 나아진게 없어요. 미술자료센터 설립이 시급하다는 얘기는 1991년부터 나왔는데 '인사동 아카이브(Archive)' 설립은 아직 요원하기만 합니다."
최근 '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Ⅰ'을 발간한 김달진(사진·56)씨는 "미술관련 종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미술정보센터가 필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달진 김달진미술연구소 소장·미술자료박물관 관장 |
그는 지난 35년간 한결같이 미술자료수집에만 몰두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중학생 시절부터 화랑가를 떠돌며 닥치는대로 미술자료를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2001년 정부 도움 없이 달진닷컴(www.daljn.com)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설립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현재 미술 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하는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지난해 9월 서울 통의동에서 창성동으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공간은 협소하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찾아간 사무실 곳곳에는 벽을 따라 기다랗게 쌓인 미술 자료들이 넘쳐났다.
"이쪽에 있는 자료는 故이규일(미술평론가·아트인컬처 발행인)선생께서 기부하신 겁니다. 해방이후 우리나라 미술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죠. 하지만 공간이 부족해 이렇게 한쪽에 쌓아놓기만 했습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기증 자료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루빨리 적극적으로 지원해 귀중한 자료들은 빨리 디지털화 해야 합니다. 제가 하나하나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일일이 스캔해서 디지털화하는데는 재정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김 관장은 1985년 미술계간지 '선미술'에서 '관람객은 속고 있다-정확한 기록과 자료 보존을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글로 당시 미술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이후 그는 수십년간 정확한 출처(Provenance)와 참조(Reference)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왔다.
"자료수집의 중요성은 미술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발전에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팔만대장경, 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자료가 남아있어 우리나라 역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전부터 계속 이슈가 돼 온 독도 문제도 그렇습니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 놓고 이를 근거로 제시했다면 일본과의 독도분쟁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는 최근 지방선거에서 시립미술관 설립을 선거공약으로 내놓은 행태에 대해서도 강하게 지적했다. 일단 하드웨어(미술관)부터 만들어놓고 소프트웨어(작품)을 채워넣겠다는 관행은 미술계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미술관 설립 이후의 장기적인 운영 방향과 비전까지 공약에 포함돼 있어야 합니다. 일단 미술관부터 건립해놓고 그다음에 어떤 작품으로 채울까하고 구상하는 건 말도 안되는 논리죠. 한쪽에서는 소장자료가 넘쳐나는데도 공간이 없어 난린데, 다른쪽에서는 건물부터 일단 세워놓고 전시를 하겠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죠."
그는 자료의 디지털화 작업 관련, 운영비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여전히 남은 일생을 미술자료의 정확한 기록과 보존에 힘쓰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때가 되면 제가 가진 모든 자료를 국가에 기부체납할 용의가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자료를 공유할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이 미술계 발전으로 이어진다면 저야 더 바랄게 없죠. 하지만 요즘 들어 지금까지 즐거워서 한 일이 오히려 족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계획한 일이 착착진행되다가 꽉 막힌 느낌이랄까요. 어마어마하게 드는 운영비에 때로는 좌절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는 "미술인 인명록Ⅱ,Ⅲ에는 단순한 기초정보를 떠나서 작품과 작품설명, 조각가 및 서예가들의 정보도 보충해 업그레이드 해나갈 것"이라며 의지를 밝혔다.
+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 :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이 7개월 여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미술인 인명록. 1850년부터 1960년까지 태어난 50세 이상 작가 4254명과 40세 이상 비창작 분야 인사 655명 등 총 4909명의 기초정보(출생지·학력·전시경력·사회경력·상훈·현직 등)가 방대하게 수록돼 있다. '더디고 힘든 작업이지만 역사는 그렇게 기록되는 것'이라는 제목의 발간사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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