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고득관 기자) A씨가 강남에 시가 10억원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자. A씨는 이 아파트를 담보로 최대한 많이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
A씨는 우선 시중은행을 찾아가 4억원을 대출 받는다. 강남 3구의 LTV(주택담보인정비율)가 40%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순위 대출을 받기 위해 저축은행을 찾아간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LTV는 60%다. 정상적으로는 대출이 가능한 금액 6억원 중 은행이 이미 대출을 해준 4억원을 뺀 2억원을 대출 받을 수 있다.
편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개인사업자는 LTV 규제를 받지 않는다. 개인사업자 등록을 한 뒤 대출을 받으면 시가 10억원 가운데 은행 대출 4억원을 뺀 6억원을 대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상당수의 저축은행들이 고객들에게 사업자등록을 부추긴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땐 문제가 안됐다. 문제는 요즘처럼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을 때다. 보통 부동산이 경매에 부쳐졌을 때 낙찰 금액은 시가의 80~85%선이다. 요즘같은 시기에는 80%선도 장담하기 어렵다.
은행처럼 선순위대출, 즉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대출금을 먼저 받을 수 있는 금융기관은 별 타격이 없다. 하지만 개인사업자 등록이라는 편법으로 대출을 해준 저축은행들은 손해가 불가피하다. 10억원짜리 아파트를 팔아 8억원을 받았는데 4억원을 시중은행이 먼저 챙겨간다면 6억원을 대출해준 저축은행은 2억원을 고스란히 날려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부실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지만 이런 편법 대출도 사실은 잠재적인 부실 요인으로 똬리틀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지금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쓰러지는 건설사들이 속출하면서 여기에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들에 대한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이 기회에 이런 저축은행권의 편법 주택담보대출도 정리하는 게 좋을 듯 하다.
금융권의 가장 큰 위기는 평판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을 커질 때다. 저축은행권이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과오를 인정하고 이를 청산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분명히 정리해야 할 시기가 온다. 그 타이밍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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