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형욱 기자) 대기업이 중소 협력사에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무리한 납품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산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수익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에도 1·2·3차로 이어지는 협력사는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 왔다. 이는 품질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역시 우려의 대상이었다.
올 초 터진 일본 도요타자동차 대량 리콜 사태도 결국 과도한 생산원가 절감, 즉 과도한 협력사의 납품단가 인하가 빚어낸 일이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8일 ‘제2차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협약 선포식’을 연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그룹은 이날 행사에서 협력사와의 공정거래를 약속하고 중소협력사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전체 지원 규모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1조1500억원에 달한다. 자금난 걱정에서 벗어나기 힘든 중소 협력사로써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될 것이다.
그룹은 또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각 계열사 대표와 협력사 대표가 나란히 배석해 그룹과 협력사가 서로 대등한 위치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이것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국내 산업계 특성상 대기업과 중소 협력사 사이의 피라미드식 ‘갑을관계’의 틀은 쉽게 부서지기 힘들다. 어떻게든 거래가 끊기지 않아야 하는 중소 협력사는 아무리 부당한 조건이라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여기에 맞출 수 밖에 없는 게 비정한 현실이다.
또 기업 대 기업의 관계 역시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이뤄지는 만큼 헛점은 어디에나 있다. 철저한 관리가 없다면 이 같은 행사도 ‘허울 좋은 퍼포먼스’에 그칠 수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이를 고려한 듯 구체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했다. 협력사 대금지급 실태를 정기 조사해 부당행위를 시정하고, 우수 계열·협력사를 포상키로 한 것이다.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도 이날 축사를 통해 “상생협력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근간”이라며 지속적인 관리를 약속했다.
여기에 ‘국민의 눈과 귀’를 자처하는 언론이 동참하지 않는다면 ‘직무태만’일 것이다. 만약에 어떤 대기업 직원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협력사에 부당한 요구를 한다면, 또 이를 본사나 공정위에 신고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면 본 기자에 제보해 달라. 일개 기자에 불과하지만 어떻게든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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