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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돈암동은 서울에서도 온도가 가장 높다. 성신여대에서 차세대 젊은 작가들의 축제인 아시아프(ASYAAF)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미대생을 포함해 777명의 예비 작가들이 저마다 갈고 닦은 결과물을 내놓고 평론가며, 화상이며, 컬렉터며 미술계의 파워집단으로부터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굳이 그림을 구입하지 않아도 좋다. 이들 그림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사물을 이렇게도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구나 그 기발한 생각과 접근법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제 스물을 갓 넘은 젊은이들의 열정과 실력이 이 정도라면 세계 미술계의 변방인 우리나라가 그 중심에 들어설 날도 그리 오래지 않겠구나 미리 김칫국을 마실 만도 하다.
요즘 미대생들은 대학문을 나설 때부터 완전무장을 하고 나온다. 졸업 작품전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례행사가 아니라, 미술계의 큰손으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한 전투장쯤으로 인식한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친다는 얘기다. 이렇게 의욕적 출사표를 던지는 미대생이 연간 1만2000명 정도다.
지난 6월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옥션의 117차 정기 경매가 있었다. 출품작이 실린 두툼한 도록이 두 권이나 됐다. 그러나 그 도록에 실린 국내 작가는 100명도 되지 않았다.
김종학·김창열·김환기·김흥수·도상봉·배병우·변종하·김기창·유영국·이강소·이대원….
서울옥션은 매년 오프라인과 온라인 경매를 10회 이상 갖는다. 2009년의 경우 메이저 경매가 3회,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커팅엣지 2회, 그리고 초보 컬렉터들을 위한 ‘My First Collection’을 비롯해 온라인 경매 등이 네댓 차례 열렸다.
그러나 116차 경매 도록을 펼쳐보거나, 115차 경매 도록을 펼쳐보아도 그 작가가 그 작가다. 앞서 언급한 늘 똑같은 작가들이, 때로는 같은 작품으로 컬렉터를 기다리고 있다.
초보 컬렉터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My First Collection’이나 온라인 경매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곳에도 ‘덜 유명한’ 새로운 작가군의 작품이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지겨운(?) 얼굴들의 작품이 ‘소품’이나 ‘판화’로 나올 뿐이다.
몇 년째 미술시장을 기웃거리면서 늘 궁금해 하던 것 중의 하나다. 국내엔 무수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왜 옥션에 나오는 작가는 정해져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대접받는 작가가 고작해야 200~300명 정도인가? 나머지는 작가가 아닌가?
얼마 전 모 옥션 관계자와 얘기하면서 새로운 작가 좀 발굴해서 올릴 수 없느냐고 따지듯이 물어봤다. 그들도 고민은 많단다. 내부에서도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서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도 적잖단다. 그런데 결론은 늘 같다고 한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옥션은 낙찰 수수료로 운영되는 만큼, 유찰 확률이 높은 작품은 시간과 경비만 낭비되고 결국 손실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소 경매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스스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옥션이라고 자부한다면 너무 궁색하고,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자세의 옥션이라면 그냥 예술품을 매개로 한 장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계에는 나름의 다양한 문제들이 산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아픈 현실은 너무도 많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분야보다도 오랜 세월 열정을 투입해온 그들이기에 그 고통과 번민은 상상 밖이다.
이는 단순히 한 화가의 불행한 개인사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붓을 꺾는 작가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미술발전을 위해서도 엄청난 손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옥션이라면, 적어도 1년에 한번쯤은 의무적으로라도 옥션에서 다뤄지지 않은 작가 군을 대상으로 한 경매를 열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작가들인 만큼 당장은 유찰율이 높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 발굴하고 선택한 작가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보장의 의미를 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발굴된 작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결국은 옥션에게도 든든한 밑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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