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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유적의 도대도시 넴루트다이의 거대석상인 안티오코스 1세의 얼굴상. 석상은 양손을 무릎에 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몸통은 대부분 파괴됐지만 머리 부분은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
(아주경제 윤용환 기자)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 터키. 인류 최초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발점이자 5000년 인류 역사의 주 무대다. 터키 여행의 묘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즐기는데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흔적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역사 이전 문명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여행도 새로운 재미다. 터키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대 역사 속 도시를 찾아 떠나보자.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는 터키 남부 네지즐리주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번성했다. 기원전 130년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들이 ‘성스러운 도시’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이곳에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신전·공동묘지·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은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에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온천욕장 '테르메'는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1354년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됐다.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의 발굴 작업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무덤유적의 도시 넴루트다이(NemrutDağı)
넴루트다이(NemrutDağı) 안티트로스 산맥 남동쪽 기슭 넴루트산에 있는 거대한 무덤유적도시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 동부에 있던 콤마게네왕국의 안티오코스 1세(BC 69∼BC 34)가 건설했다.
해발 2150m의 산 정상에 돌을 잘게 부숴 만든 높이 50m, 지름 150m의 인공 산이 있다. 그 밑에는 곳곳에 바위 덩어리가 흩어져 있다. 1953년 발굴조사가 시작됐으나 아직까지 지하 널방으로 통하는 길은 찾지 못하고 있다.인공 산 정상 아래 북·동·서 세 방향으로 테라스가 있다.
북쪽 테라스에는 길이 80m의 벽이 세워져 있는데, 양쪽 끝에 독수리가 조각돼 있다. 동쪽 테라스에는 돌로 된 단 위에 높이 약 9m에 이르는 신들의 거대한 석상이 있다.
5개의 석상은 양손을 무릎에 얹고 의자에 앉아 있는 형상이다. 아쉽게도 머리 부분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서쪽테라스에도 안티오코스 1세를 비롯한 여러 신들의 거대한 석상이 있다.
몸체는 크게 부서지고 발부분만 남아 있으나 굴러 떨어진 머리 부분의 형태는 잘 보존돼 있다. 석상 뒤쪽에는 4변이 각각 4m에 이르는 석판에 '왕의 점성술사'라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고대 리키아의 수도 크산토스
크산토스(Xanthos)에는 고대 왕국 리키아의 전통과 헬레니즘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크산토스의 역사는 BC 12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38년 영국의 찰스 펠로우스 경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펠로우스 경은 이곳에서 발굴한 부조와 고고학적 유물들을 런던으로 옮겨가 현재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은 1950년대 이후 시작됐다.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리키아 왕국의 대표적 유적인 암굴 묘, 기둥 형태의 석관 등은 헬레니즘 문명권의 장례예술을 잘 보여준다. 또한 문자가 새겨진 비석들은 인도-유럽어의 고대형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문화적··역사적 자산이 되고 있다.
레툰(Letoon)은 크산토스에서 약 10km 떨어진 고대 리키아의 종교 중심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레토(Leto)가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폴로와 아르테미스를 모신 세 개의 신전이 있다. 이 중 레토 신전이 가장 최근에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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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투르크 시대의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돼 있는 사프란볼루. 옛 시가지 돌길을 따라 늘어선 전통가옥이 2000여 채에 이른다. |
흑해 연안에 위치한 사프란볼루(Safranbolu)의 주택들은 대부분 19세기 오스만제국시대에 완공된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숙박시설로 사용되는 곳도 많다.
사프란볼루는 원래 염색재와 약재, 향신료 등으로 쓰였던 사프란 꽃 군락지로 유명했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무역이 활발하던 시절 대상들의 중간 경유지로 번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옛 시가지에 잘 보존돼 있는 전통건축물들로 유명하다. 돌길을 따라 늘어선 전통건축물들은 총 2000여 채에 이른다. 이중 1131채가 보호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오스만투르크 시대 건설된 건물로 역사는 14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 전통가옥이지만, 모스크 25채와 터키 식 전통 목욕탕 하맘 5채, 대상용 여관 3채, 분수와 무덤, 시계탑과 해시계, 다리 등도 남아있다.
정부에서 가옥을 국유화해 관광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카이마카믈라(Kaymakamlar) , 뭄타즐라(Mumtazlar) 저택이 대표적이다.
1322년에 건립된 올드(Old) 모스크, 터키식 목욕탕, 슐레이만 파샤(Suleyman Pasha) 이슬람 학교 등은 오랜 역사 때문에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고고학의 도시 트로이(Troy))
트로야 또는 트로이아라고도 불린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는 ‘일리오스’라고 불렀다. 스카만드로스강과 시모이스강이 흐르는 평야의 나지막한 언덕 히살리크에 있다.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이 1870년부터 처음으로 발견했다. 슐리만은 이때 발굴한 유물들을 독일로 밀반출, 1881년 베를린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함으로써 찬란했던 트로이문화가 세상에 알려졌다. 유적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하층은 BC 4000년 말기의 것으로 성벽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2층에는 메가론식의 왕궁으로 짐작되는 건물이 있다 여기서 많은 금·은 제품이 발견됐으며 처음엔 호메로스 시대의 유품으로 짐작했다.
그 후 슐리만을 도운 독일의 고고학자 되르프펠트는 6층이 호메로스시대(BC 15∼BC 12)라고 밝혔다. 1930년대부터 다시 조직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미국의 블레겐이 한 층 위인 7층 A를 호메로스 시대라고 수정했다.
7층 B는 철기시대 초기, 제8층은 그리스인이 이민(移民)한 아르카이크시대의 유적이다. 맨 위층인 9층은 헬레니즘시대와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이 무렵 도시는 ‘일리움’이라고 불렀다. 이 시대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원정 도중에 일부러 이곳을 들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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