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은행 예금에 뭉칫돈이 몰리며 예금증가율이 기록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마땅한 자금운용처가 실종됐다며 대출은 포기한 채 채권 상환이나 유가증권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3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은행권 등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예금잔액은 지난 7월 말 현재 841조492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01조5523억원보다 19.9%(139조9402억원) 급증했다.
전년 동기대비 상승률로는 지난 2001년 1월의 22.2%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년 동기대비 예금 증가율은 지난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에도 10.0~13.0%대의 안정적인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던 것이 올 들어 1월 15.0%, 2월 14.3%, 3월 15.3%, 4월 15.3%, 5월 18.2%, 6월 18.2% 등으로 증가세가 가파라지고 있다.
은행예금이 급증한 것은 기준금리 인상에도 시장금리가 하락하며 시중의 대기성 자금이 은행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아직 경기회복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 부족한 점도 예금 증가를 부채질했다.
실제로 전체 예금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축성예금의 경우 7월 말 현재 잔액이 754조919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2%(131조8870억원)나 증가했다. 이 역시 지난 2001년 1월의 24.6% 이후 9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에 비해 대출 증가세는 오랜 기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예금은행의 총대출 잔액은 7월 말 현재 978조91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28조2013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년 동기대비 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기업대출을 중심으로 10.0~13.0%대의 상승률을 보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위축되기 시작했다.
특히 올 들어 1월 3.7%, 2월 3.4%, 3월 3.0%, 4월 2.9%, 5월 3.2%, 6월 3.0% 등으로 지난 1999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대출이 크게 위축된 것은 예대율 규제 등 금융당국의 건전성 강화 조치로 은행들이 대출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15개월 만에 최고수준을 기록하는 등 가계와 기업의 건전성이 악화되는 점도 대출 증가를 억누르고 있다.
또 정부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에도 부동산 경기가 침체를 거듭하는 등 가계와 기업의 대출 수요가 냉각된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DTI 완화에도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며 "대출 연체율이 오르는 등 아직 건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은행들은 대량으로 쌓인 예금을 과거 고금리로 발행된 은행채를 상환하거나, 채권·주식 등 유가증권 투자를 늘리는 데 쓰고 있다.
지난 7월 말 은행권의 은행채 잔액은 178조4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99조5184조원보다 10%(21조4773조원) 가량 줄었다.
올 상반기 7개 시중은행들의 원화 유가증권 평균 잔액은 약 162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152조원보다 10조원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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