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따라 제시 가격도 천차만별
(아주경제 이하늘·조영빈 기자) 가전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유통매장을 찾으면 ‘출고가’라는 생소한 가격을 접할 수 있다. 이는 제품 출시에 맞춰 소비자들에게 구매가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의 혼란을 야기하고, 심지어 선의의 고객에게 피해를 주도록 악용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백화점 및 대리점 종합 가전매장 등 유통점들은 이 출고가를 기준으로 특별 행사기간, 가전업체의 특가할인을 언급하며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50%에 달하는 할인액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액수와 기준이 가지각색이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월 결혼을 앞두고 두달 전인 3월 3D TV를 예약구입한 한 소비자는 “3일간 한정세일 기간인데다 3D 안경과 블루레이플레이어도 지급한다고 해 서둘러 예약했다”며 “나중에 알게 됐지만 제품이 설치된 5월에는 예약 당시 계약금액보다 50만원 이상 가격이 떨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역 인근의 한 전자제품 할인마트. 수개월 전 출시된 3D TV에는 380만원의 가격표가 붙어있다. 그 아래엔 작은 글씨로 ‘출고가 430만원’이라고 명시됐다. 출시 수개월만에 50만원의 가격을 할인해주는 것.
제품에 관심을 보이자 영업사원은 각종 특가 할인을 계산하더니 “이번주까지 할인 행사기간이라 270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430만원에 달하는 제품이 어느새 160만원이나 저렴해진 것. 여기에 3D 안경과 외장하드 등은 덤이다. 제휴 카드사 혜택을 더하면 실구매가격은 230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출시 초기 출고가 대비 20~30만원 상당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던 제품은 불과 수개월만에 200만원이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아울러 ‘이번주까지만’이라던 특가 행사는 한주를 넘긴 1일에도 계속된다. 다시 매장을 찾자 유통점 직원은 “이번주에만 특별히 행사에 들어가는 제품”, “한정물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지난주에 했던 설명을 그대로 반복하며 서둘러 예약구매할 것을 종용한다.
이같은 유통점의 판매방식은 가격 물정에 어두운 고객들은 더욱 큰 피해를 준다. 같은 기간의 동일 제품을 한 유통점에서 구매해도 고객에 따라 유통점이 제시하는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소비자에 비해 비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도 “출고가 대비 수십 퍼센트 할인됐다”는 유통점 직원의 말에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취재진이 서울 시내 10여곳의 유통점을 돌아본 결과 이들 유통점 직원들은 출고가는 물론 직접 작성한 가격표보다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다. 제품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 제시된 가격은 또 다시 떨어졌다.
아울러 “(타 유통점에서) 어디까지 가격을 받았냐? 최저 가격에 맞춰주겠다”며 가격 협상에 나서는 곳도 상당수 존재했다.
한 유통점 매니저는 “출시 가격을 높게 책정해야 나중에 할인할 수 있는 폭도 그만큼 커져 싸 보이는 효과가 있다”며 “이는 오랜 기간 계속된 가전기업과 유통업계의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합리적인 소비를 위한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해야 하는 출고가 제도가 오히려 소비자의 혼란을 야기하고 경우에 따라 오히려 손실을 입히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전제품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더욱 향상된 제품이 출시되면서 가격이 급격히 떨어져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먼저 제품을 구입한 고객은 그만큼 앞선 제품을 먼저 이용하는 가치를 얻은 것이고 늦게 구입한 고객은 저렴한 비용을 들인만큼 출고가로 인한 피해가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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