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다'는 건 딱 부러지는 만큼 정나미가 없다는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우리 말로 치면 '깔끔하다' 정도 될까? 깔끔하다는 국어사전에 '깔밋하고 매끈하다. 솜씨가 야물고 끌끌하다'로 적혀 있는데, 어딘가 구닥다리 냄새가 난다. 외려 '쿨하다(명쾌하다)', '스마트하다(말쑥하다)', '엣지있다(마무리 선 처리가 아주 잘 되어 맵시 나다)' 정도로 이해하는 게 훨씬 빠르다. 깔끔하게 처리했어, 또는 깔끔하게 선을 그었지, 깔끔하게 헤어졌지 등의 표현은 어감으로 '쿨하다'와 거의 일맥상통한 느낌을 준다.
어떤 맥주 맛처럼 정말 쿨하고 깔끔하고 스마트한 이벤트가 어디 없을까?
편하고 배부르고 적당히 고민도 있고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말인데다 울긋불긋 패밀리 레스토랑의 메뉴들이 군침흘리게 하는 참 좋은 시절인데, 뭔가 뒷골이 당기는 긴장과 가슴을 짓누르는 갑갑함은 웬걸까? 두말 할 나위없이 '미사일 포격' '핵탄두 공격' 등 연쇄적인 전쟁 위협이 계속되는 탓일 게다.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지뢰를 밟고 서 있는 듯, 깨질 듯 깨질 듯 깨지지 않는 얼음판 위를 걷는 듯 머리칼이 쭈뼛 서고 닭살이 돋는데, 그 끝도 알 수 없는 객관적인 상황. 가슴이 콩닥콩닥 하지만 표시도 못 내겠고 우왕좌왕 누구 말이 맞는 지 종잡을 길도 없는 심리적인 상태. 거리는 조용한 듯 시끄러운 듯 모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데 사람들은 관심이 있는 지 없는 지 표정을 감춘 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
'초토화'와 '핵 전쟁' 등 극단적 표현까지 다 동원된 마당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옅은 안개처럼 긴장감이 스멀스멀 감도는 데 딱히 어떤 행동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디 쿨한 사건, 쿨한 소식, 쿨한 이벤트 없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뇌 세포 속 나노 안테나를 세운 채 신문을 샅샅이 읽고 TV 뉴스에 귀를 쫑긋거리며 잘난 체 인터넷도 들락거린다. 질정머리없는 주절거림에 배배 꼬인 댓글을 달아 놓고 이게 뭔 말인가 싶어 지워버리려다 에잇, 케세라세라(될 대로 되라) 놔둬버린다. 이상한 말의 파장이, 헛소문의 파장이 어디까지일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나보다 더한 인터넷 악동들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도처에 널렸는데 내 하찮은 글이 아무려나 무슨 대수일까 싶어 더 이상 머리 굴리기조차 귀찮다.
그렇다고 정부나 정치권이 나 대신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옳은 길을 알려줄 것 같지도 않다. 이번에 믿으면 다음번에 뒤통수를 때리고, 앞으로 잘하겠지 두둔하면 오늘의 우왕좌왕이 쉬 수습될 것 같지 않아 불안감만 커진다. 전문가의 입은 닳고 닳아 밥맛이 떨어질 정도다. 질 높은 정보는 감추고 자기가 보기에도 고개 갸웃한 정보만 나불거린다. 그리고 반응을 떠본다. 달이 궁금한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그 달을 가려버린다. 인터넷 헛소문보다 더한 뭉뚱그림의 말잔치다. 중국, 러시아도 제각각 으르릉 그르릉 발톱을 세우고 뻔한 사실을 정치적으로 왜곡하며 눈을 부라리고 미국도 '궁극의 음모를 꾸미는 당사자'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공식대응으로만 일관한다. 유엔도 안보리도 한낱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넋을 놓고 뭔가 터지기만 기다리면 되는 걸까? 첨단전에는 한미가 강하고 재래전에는 북한이 강하다던데, 우리 아파트 단지는 안전할까? 피난짐과 피난처는? 벌써 싸놓고 미리 구해놓았어야 할까? 하루 하루 어리둥절하고 갑갑해서 미치겠다.
그래서 이 쿨한 연말에 어디 쿨한 이벤트 없을까, 심란한 마음이 이리 헤매고 저리 휘돈다. 캐롤이 울려퍼지고 호호 깔깔 웃음소리 넘치고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천지를 환하게 밝혀야 할 행복한 시즌인데, 우리 모두 너무 헤매고들 있다. 아이러니하게 쿨해도 너무 쿨한 연말이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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