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美 '일시적 디폴트' 정크 강등 경고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8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8월 초까지 정부 채무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재무부 채권이 정크로 분류될 수 있다"고 밝혔다. 피치는 특히 미국이 일시적인 채무상환 불이행(디폴트) 사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주요 신평사 가운데 피치가 처음이다.
피치는 "채무 한도를 늘려 채무 변제를 하게 되면 다시 등급이 올라가지만 지금처럼 최고 등급인 'AAA'는 아닐 것"이라며 "세계 최대 차입국이자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이 디폴트에 들어가게 되면 지금도 취약한 미국과 세계의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피치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투기' 수준의 4번째 등급인 'B+'로 현 수준에서 13계단 추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피치는 오는 8월15일 미국 정부가 갚아야 할 820억 달러의 채무 변제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중에는 만기가 도래한 300억 달러의 재무부 채권, 270억 달러의 재무부 어음 등이 있다.
이같은 경고는 피치가 처음이 아니다. 피치와 함께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 꼽히는 무디스는 지난 2일 피치와 비슷한 경고를 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4월 같은 문제로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로 강등했다.
◇백악관-공화당 9일 채무 상한 인상 논의 재개
미 정부의 공공부채는 지난달 초 의회가 정한 부채한도 14조2940억 달러에 도달해 정부는 돈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다. 정부 지출은 대부분 정해진 것들이기 때문에 미 정부는 중앙은행 예치금을 돌려 쓰고 정부기금 투자지출을 줄이는 등 비상 운영을 해오고 있다. 디폴트만 간신히 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는 8월 초면 이 비상조치도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이 전에 반드시 부채한도를 늘려야만 한다. 미 정부의 세출은 매달 세입보다 1000억 달러씩 많은 구조다. 공화당은 수 조 달러의 지출을 줄이는 등 이 모순된 구조를 고쳐야만 부채한도를 늘려주겠다며 백악관에 맞서고 있다.
피치의 경고가 나오자마자 백악관은 조 바이든 부통령이 주재해 온 공화당과의 협상 모임이 9일 재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부통령은 하원 다수당 대표 에릭 캔터(공화)와 상원의 존 킬(공화) 의원 등과 막후 협상을 벌여왔다.
공화당은 부채한도를 약 2조 달러 늘리면 내년 2012년 선거까지는 충분하다고 보지만, 민주당과의 협상에 따라 단기적으로 조금씩 한도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중국·오만 등 주요 美 채권국 디폴트 경고
미국이 신용위기에 처하자 곳곳에서 우려스런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로이터는 특히 중국과 원유수출국 등 미국의 주요 채권국들이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리다오쿠이 중국 인민은행 고문은 이날 "미국의 디폴트 리스크는 엄연히 존재한다"며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채무 상한 인상을 둘러싼) 불장난을 멈추길 바란다"고 말했다.
산유국인 오만 중앙은행의 한 고위관료도 "미 의회가 부채 상한을 두고 실없는 장난을 그만두길 바란다"며 "미국의 디폴트 사태는 오만은 물론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큰 걸프 산유국들의 경제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중동지역의 산유국들은 지난 3월 말 현재 2223억 달러 어치의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4위 미 채권국이다. 세계 최대 미 채권국인 중국은 1조 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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