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영화 왜?> 두 가지를 무시한 '고지전'…'그래서 완벽하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1-07-12 16:1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스케일과 과잉 감정 배제, 캐릭터 조율한 연출력 탁월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전쟁 영화를 보면 크게 두 가지 포인트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영상 언어로 해석할 수 있는 스케일이다. 가장 좋은 예가 할리우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 전투신과 국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라스트 전쟁 장면이다. 거대 스크린을 통해 표현된 이 같은 장면은 시각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두 번째는 감정의 호소다. 전쟁이 가진 참혹함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주제 의식 또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인물간의 감정 충돌이 관객들의 공감대와 가슴을 자극한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한 조화를 이뤄 소위 말하는 웰메이드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가 탄생한다. 하지만 그 조화가 분명 쉽지는 않다. 이런 관점에서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의미가 크다. 과잉 감정을 배제했고, 전쟁 영화 고유의 스케일도 철저히 외면했다. 장 감독은 “전쟁 영화가 아닌 전장 영화”라고 '고지전'을 설명했다.



‘고지전’은 약 3년 간 지속된 한국 전쟁이 배경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조인까지 휴전선 인근 산악지대에서 벌어진 남과 북 병사들의 지루한 공방전과 그 과정에서 일상처럼 반복되는 삶과 죽음을 말한다.

영화는 국군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의 시선을 통해 그려진다. 한국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은 시기 방첩대 대장은 동부전선 애록고지 주둔 부대원 중 누군가 인민군과 내통한다는 정보를 입수, 강 중위에게 수사를 지시한다.



강 중위는 애록고지 주둔 부대 신임 중대장 및 신병과 함께 현장으로 파견되고, 그곳에서 전쟁 중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난다. 하지만 강 중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수혁은 예전 모습이 아니다. 자신의 중대 신병을 적군의 미끼로 쓰고, 한 팔을 잃은 전쟁고아에게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등 인간성을 상실한 전장의 괴물이었다.

부대원들 역시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한 인민군과의 뺏고 뺏기는 고지 쟁탈전이 거듭 될수록 강 중위는 수혁과 그가 몸담은 악어중대의 비밀에 한 발자국 씩 다가선다.



총 100억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답지 않게 ‘고지전’은 전쟁 자체의 규모로 관객들을 압도하지는 않는다. 대신 10여명이 넘는 각각의 주조연급 캐릭터 모두에게 고른 시선 배분과 개연성을 부여해 시각이 아닌 감정을 압도시킨다. 특히 주역인 강은표와 김수혁 투톱의 팽팽한 감정 대결은 영화가 전쟁이란 코드로 치우치는 것을 견제한다.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를 통해 이미 투톱 버디 무비에 강점을 보인 장훈 감독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드라마에선 큰 성공을 거뒀지만 스크린에선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한 고수는 복잡한 내면을 지닌 김수혁을 완벽하게 소화 내며 스스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파도처럼 물결치는 김수혁의 감정선을 능수능란하게 조율한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강은표역의 신하균 역시 때론 폭발하고 한편으로 땅으로 꺼져가듯 고수가 연기한 김수혁의 힘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인다. 이밖에 류승수 류승룡 고창석 김옥빈 이다윗 등도 각자 제몫을 하며 영화의 한 축을 책임진다. 악어중대 중대장 역의 이제훈은 이번 ‘고지전’이 발굴한 최대 수확 중 하나. 



하지만 무엇보다 '고지전'의 숨은 주역은 전체 배경인 '고지'다. 2009년 실제 큰 산불이 났던 경남 함양의 650m 높이 백암산 전체를 실제 세트로 만든 배경은 시작과 함께 그 이질적인 모습이 화면을 가득 메우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배우들에게 동화돼 한국 전쟁 당시의 전장으로 스스로를 탈바꿈한다. 여기에 실제 야산이 무대인 탓에 제작진이 자체 개발한 일명 ‘가마캠’은 고지 자체가 갖는 치열함과 비장미를 한 층 극적으로 담아냈다.



전쟁이 가진 스케일도 전쟁 자체가 주는 인간성 상실도 ‘고지전’에는 없다. ‘고지전’은 반복된 전투로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구분 지을 수 없게 된 전장의 처연함을 잔인하리만치 관조한다. “너무 오래돼 싸우는 이유를 잊어 버렸다”는 극중 인민군 중대장의 말처럼 ‘고지전’은 힘의 논리를 지배하는 소수의 놀음에 장기판위 말로 전락한 잊혀진 인간들의 자조 섞인 독백이자 몸부림일 뿐이다. 개봉은 오는 20일.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