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경기침체 때가 대표적이다. 2000년 이후 품질을 기본으로 해외 생산시설을 늘리는 ‘도요타식 성장’을 추구해 온 현대차는 같은 해 말 미국발 글로벌 경기침체를 기회삼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판매 대수도 2008년 420만대, 2009년 464만대, 지난해 574만대에서 올해 650만대(전망)로 매년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로써 엔고와 동일본 대지진 등 연이은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한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 이토 다카노부 혼다 사장 등 글로벌 자동차 업계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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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오히려 금융위기 회복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올 초부터는 다지기로 선회했다. 공장 가동률이 전 세계적으로 100%를 넘어서는 가운데서도 내년께 기아차 중국 3공장을 짓기로 한 것을 제외하면 기존 공장의 생산률 향상만으로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키로 했다. 올 하반기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그리스발 유럽 금융위기가 불어닥쳤고 결과적으로 정 회장의 선택은 다시 한번 맞아떨어지게 됐다.
현대.기아차가 불황 속에서도 전 세계에 걸쳐 급성장을 이어가자 해외 CEO들이 한국차를 보는 눈길도 달라졌다. 올 9월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는 마르틴 빈터콘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이 현대차가 유럽을 겨냥해 내놓은 신형 i30를 보는 영상이 현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 하반기 들어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 이토 다카노부 혼다 사장 등이 연이어 한국을 찾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자사 국내법인을 격려차 방문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이들의 판매량이 연 1만대에도 못 미치는 걸 감안하면 현대.기아차를 의식한 방문이었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올 6월 방한 땐 현대차에 대한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이후 9월에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폴크스바겐, 현대차 등 강력한 경쟁사의 움직임에 대해) 신경쓰인다”며 “어떤 의미에서 도요타는 이들의 도전자”라고 했다. 2008년 이전 일본 자동차업체와 언론은 한국차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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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신년사 하는 정몽구 회장 모습. (그룹 제공) |
한 글로벌 자동차업체 한국지사의 고위 관계자는 “본사에서도 이미 현대.기아차를 글로벌 톱 플레이어로 인정하고 있다”며 “이 같은 상승세가 향후 양적 성장에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 가치 향상, 즉 질적 성장으로 이어질 경우 10여년 전 도요타가 그랬듯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모두 현대차 배우기에 본격 나서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 동안 우직하게 ‘품질’만을 고집한 현대차 특유의 경영철학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정몽구 회장은 최근 전 임원들이 매주 토요일 출근하던 관행을 없애고 3주에 한번 출근하도록 근무체제를 바꾸도록 지시했다. 스스로 (주말) 출근을 줄이겠다는 뜻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를 근면.성실의 상징이었던 현대차에 창의 경영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올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New Thinking, New Possiblity)’라는 새 브랜드 슬로건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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