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머무는 곳마다 향긋한 자연의 보고 양구

  • 안보관광지 넘어 생태문화체험 여행지로 각광받아 <br/>간간히 운무가 보이는 화채그릇 모양의 펀치볼

자연이 만들어낸 펀치볼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운무가 낀 펀치볼의 모습

아주경제 최병일 기자=우리국토의 정중앙. 남과 북을 아울러 가운데 방점을 찍는 곳(배꼽)에 위치한 양구는 사실 관광지로 조명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의 상당부분이 군사보호지역으로 묶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는 길도 험난해서 편한 것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구미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구는 숨겨진 보석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목마다 우리의 눈을 환하게 하는 절경들이 연속해서 이어진다.

자연생태환경이 이곳처럼 잘 보존된 곳도 드물다. 계곡으로 흐르는 옥색 물줄기 밑으로 열목어가 살고 있고, 개느삼과 금강초롱, 솜다리(에델바이스)가 자생하고 있다. 백로가 서식하고 독수리도 볼 수 있다. 멸종위기에 있는 산양이 뛰어노는 곳이 바로 양구다.

이제는 세계적인 미술가로 추앙받고 있는 고 박수근 화백의 작품들이 오롯이 모여 있는 미술관이 들어서면 질박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에 빠져들 수도 있다. 한국전을 경험했던 노인들은 이곳에 들르면 빠지지 않고 펀치볼을 찾으며 처절했던 전쟁시기를 회고하곤 한다.

강태공들이 제일로 손꼽는 곳도 양구다. 양구의 파로호에는 아직도 팔뚝만한 잉어가 잡혀 꾼들에게 희열을 안겨준다. 질박하지만 풋풋한 사람들의 인정이 목마를때 자연다운 자연을 느끼고 싶을 때 주저하지 말고 양구로 발길을 돌려보라.

양구읍에서 해발 1천50m의 돌산령 고개를 넘어가면 360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거대한 화산 분화구 같은 농경지대가 바로 펀치볼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안보유적지중 하나인 펀치볼은 피의 역사가 아로새겨 있는 곳이지만 도솔산에서 바라본 펀치볼은 장엄한 자연을 느끼게 한다. 간무봉과 운봉을 건너온 운무가 겹쳐지고 마치 솜이불을 뜯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은은하게 깔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때마침 내리는 비는 마치 눈물처럼 축축하다. 펀치볼을 둘러싼 산이 바로 생태환경의 보고인 대암산이다. 남북으로 11.95㎞ 동서로 6.6㎞의 길쭉한 타원형인 해안분지는 면적이 61.5 ㎢로 위에서 보면 둥근 접시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6.25때 외국 종군기자들이 그 생김새가 화채그릇과 비슷하다고 해서 펀치볼이라고 불렀다. 펀치볼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와이에도 있다. 높이 150m의 사발모양의 사화산으로 화구내에는 국립태평양 기념묘지가 있다.

한 곳은 전쟁의 상처가 아로새겨진 곳이라면 또 한 곳은 전쟁으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간 이들의 휴식터이다. 펀치볼에는 하나의 면(해안면) 전체가 들어 있다. 해안면은 남한 최북단 면이다. 해안면 현리의 북쪽 경계선은 남한쪽 철책선이다. 그 철조망선 중간 가칠봉(1천 242m) 능선에 북녘땅을 코앞에 내려다보는 을지전망대가 있다. 을지전망대로부터 북쪽 1,2㎞ 지점에 북한쪽 철책이 있고 그 사이가 비무장지대(DMZ)이다. 마치 양의 창자처럼 급하게 구부러진 산등성이의 길. 펀치볼의 안쪽은 산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계단식 밭을 이루고 있고 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와우산 구릉 너머로 농가들이 정겹게 처마를 맞댄다.

화채그릇 모양을 닮았다 하여 펀치볼이라 이름붙여진 이곳은 한국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묘한 형상의 분지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아직까지 학계의 정론화된 학설은 없다. 어떤 이는 1천 만년전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풍화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인해 생겨났다고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해안분지가 예전에는 호수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산중턱에서 조개껍질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모두 맞을 수도 있고 또 모두 아닐 수도 있다.

이 지역은 3가지가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사찰이 없고, 토박이가 없고 따라서 과거가 없는 곳이다. 한국전쟁당시 이땅에는 가히 상상을 넘는 포탄들에 의해 무수히 유린당했다. 어림잡아도 최소 10만발 이상의 포탄들이 터졌고, 수 만명의 인명이 사라졌다.

비극은 잊지 말되 기념해서도 안될일이다. 이땅에 햇살처럼 평화가 샘솟는 날 펀치볼은 말그대로 향긋한 과일이 담긴 화채그릇이 될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면 과일향이 온 사방으로 퍼져 나비가 날고, 벌들이 몰려드는 달콤한 땅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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