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한중 FTA, 전략적 시나리오와 전술적 대응

지난 5월 베이징에서 합의된 한중 FTA 협상개시 공동성명은 상호성과 포괄성, 실질성을 기본원칙으로 한다.
민감 분야를 상호 이해하고 개방요구 수준을 단계적으로 조정해나가자는 것이 상호성이다. 포괄성 원칙은 관세인하 외에 서비스, 투자, 협력 등도 협상대상에 넣자는 것이다. 교역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장애요인들을 제거하고 서비스무역의 자유화 수준을 WTO 양허수준 이상으로 하자는 것은 실질성이다.

한중 FTA의 효과와 추진전략에 대해선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왔음에도 방향성에서 부터 서로 다른 시각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FTA는 관세 인하 수준과 개방의 범위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전략적 시나리오로 구분해볼 수 있다. 제1 시나리오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협상이다. 상품분야에서 대폭적인 관세인하를 하면서 동시에 서비스, 투자, 규범 등도 폭넓게 개방하는 것이다. 제2 시나리오는 높은 수준의 제한적 협상이다. 관세인하는 대폭적으로 단행하지만 상품교역 이외의 의제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제3 시나리오는 낮은 수준의 제한적 협상이다. 상호 민감 분야를 의식해 관세인하 폭을 제한적으로 하며 서비스 등 기타분야 등에 대해서도 개방을 최소화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4 시나리오는 낮은 수준의 포괄적 협상이다. 상품관세 인하 폭은 낮은 반면 서비스, 투자, 규범을 폭넓게 규정한다.

◇한중 FTA 전략적 시나리오

관세 인하 폭을 높거나(high) 낮지(low)않은 중간수준(mid-level)로 하고 개방범위도 포괄(comprehensive)과 제한(restrictive)의 중간단계로 절충할 경우 시나리오는 아홉 개까지로 확장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한중 FTA의 전략적 방향설정 검토란 차원에서 네 가지로 국한해보자.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네 가지 전략 시나리오별로 한국과 중국의 득실은 ‘죄수의 딜레마’처럼 엇갈려 나타난다. 양국을 상대 비교할 때 중국은 제조업 경쟁력이 강하고 서비스업은 약하다. 한국은 그 반대구조다. 중국은 개방범위를 상품무역 분야(관세양허)로 한정해야 실속을 챙길 수 있지만 한국은 상품무역보다 서비스무역에 방점을 찍어야 득이 된다. 한국은 낮은 수준의 포괄적 협상(제4 시나리오)이 가장 유리하고 중국은 높은 수준의 제한적 협상(제2 시나리오)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어느 한쪽에 배타적 이익을 주면서 다른 쪽에는 일방적 피해로 나타나기 때문에 채택 가능성이 낮다.

◇공방과 타협속에서 상생을 위한 접점을 찾아야

양국이 현실적으로 이익과 피해의 균형점을 찾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할 때 높은 수준의 포괄적 협상(제1 시나리오)과 낮은 수준의 제한적 협상(제3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갈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은 까다로워진다.

제1 시나리오는 이렇게 전개된다. 중국의 평균 수입관세율은 9.8%지만 수출가공용 원부자재라면 관세 환급제도가 있어 실제 많은 수입 공산품의 실제 관세율은 그 4분의 1선으로 추정된다. 한국이 중국산 공산품에 부과하는 6%대의 수입관세율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관세철폐 논의 과정에서 상호성을 강조할 경우 한국은 중국보다 관세율을 더 많이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제조업보다 농수산물에서 한국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또 포괄적 협상을 한다고 해도 중국이 고분고분할 것 같지 않다. 예를 들어 도소매 유통, 운송, 통신, 의료, 교육, 금융 등 서비스분야는 우리 기업들이 중국 내수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할 분야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국이 높은 장벽을 쌓고 개방을 꺼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협상개시 공동성명의 원칙 설정과는 무관하게 중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방어적인 협상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제1 시나리오는 다수의 선행연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자칫 한국의 이득이 안개 속 형세가 될 우려가 있다.

제3 시나리오는 어느 일방에도 큰 손실이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이득도 없는 제로섬과 같은 구조다. FTA를 통한 상호이익과 공동번영의 모색보다는 협상 그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것이며 그런 만큼 단기간 내 조속한 협상 타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존 WTO와 비교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 “그럴 바에야 FTA를 왜 하나”는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무늬만 FTA’란 지적이 뒤따를 수 있다.

결국 절대적으로 유리하거나 혹은 불리하기만한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고 다른 대안 시나리오들도 대책 없이 선뜻 쥘 경우 실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그래서 개별 시나리오의 취사선택보다는 협상의 틀을 보다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전술적 차원의 대비가 중요해진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준비해야할 과제 중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선 한국은 비교우위 분야를 엄선해 집중적이고 치밀한 개방 요구안을 만들어야 한다. 상품에서는 전자통신, 자동차, 고급철강 등 우리가 경쟁력을 갖춘 분야의 관세 및 비관세장벽 철폐를 이끌어내야 한다. 중국이 개방을 최소화하려는 서비스 분야에서는 개방이 그들에게도 이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비즈니스모델을 제시하며 협상에 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중국 특유의 배타적이며 숨어 있는 시장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겉으로는 열렸지만 속으론 여전히 잠겨있는 ‘대외개방-대내폐쇄’형 시장이 중국이다. 공식 규제와는 달리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른바 ‘잠규칙’(潛規則 latent prctice)이 곳곳에 숨어 있다. 행정 권력이 시장장벽을 두르는 행정성 독점장벽, 지방보호주의 장벽, 국영기업 독점 장벽 등이 그런 사례다. 많은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서 각종 잠규칙에 부딪히고 있지만 이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필드 스터디가 부족한 상황이다. 업종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요인들은 꼼꼼하게 찾아내 양허요구안에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농업 등은 우리의 초민감 분야지만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보다는 과거 중국이 호주 등과 FTA를 체결하면서 자국 농업을 어떻게 보호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역이용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또 중-대만 ECFA 체결 후 대중국 수출이 늘어난 대만 농산물에는 어떤 품목이 있는지 그 요인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과제다.

◇백년대계의 안목이 필요한 협상전략

넷째 협상의 시야를 현재가 아닌 미래에 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은 지금 7대 신흥전략산업을 필두로 경제발전방식과 산업구조의 대전환을 꾀하고 있다. 한중 경제교류가 종래 수직분업 시스템에서 수평분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 상호보완성은 줄어들면서 경쟁분야는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10년 후, 20년 후에 벌어질 양국의 경제산업 구도를 미리 조망하고 협상전략을 짜야 하는 이유다. 지난 1년여 동안 중국은 산업(업종)별 12.5 규획을 1백 개나 쏟아졌음에도 우리는 무엇이 어떻게 나왔는지 감조차 못 잡고 있다.

다섯째 중국이 앞서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의 효과를 정밀 관찰하면서 우리의 선입견을 걷어내는 자세도 중요하다. 중국과 대만은 2011년 1월 상품 조기자유화(EHP) 발효 당시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더 큰 폭의 관세철폐조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1년여 경과 후 양안 교역실적에서는 대만상품의 중국시장 점유율보다 중국 상품의 대만시장 점유율이 훨씬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 대만정부 싱크탱크의 연구결과다. 시장개방 자체가 절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그보다는 중국내 자체조달범위 확대와 기업경쟁 백열화 등 부정적 요인이 보다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9년째를 맞이한 중-홍콩 CEPA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사례가 관찰된다. 중국인들은 명절 연휴 때면 으레 홍콩쇼핑 대장정에 나선다. CEPA로 모든 홍콩상품이 무관세로 중국에 들어가면 중국인들이 굳이 홍콩을 찾지 않고도 현지에서 손쉽게 쇼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렇게 해서 광둥성에만도 홍콩상품 전문매장이 여럿 생겼지만 막상 중국 소비자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홍콩상품을 사러 홍콩에 간 것이 아니라 홍콩에 갔기 때문에 홍콩상품을 산 것이라는 중국인들의 묘한 대답은 중국과의 FTA 협상과정에서 두고두고 기억해야할 대목이다.
한중 FTA는 매우 긴요한 것이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내려면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당장 생각부터 달리해야 한다. 협상이란 상대가 있고 내가 있기 마련인데 그 동안 자신만 생각했던 건 아닌지...

<박한진=KOTRA 베이징무역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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