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동 국세청장은 2일 오전 서울 수송동 청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범죄를 수반하는 탈세의 수단이 대부분 현금거래다. 이렇게 세금을 내지 않고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의 통로를 차단하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지하경제 양성화의 해법으로 현금거래의 탈세구조 타파를 제시한 것이다.
지난 2011년 4월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경찰들이 굴착기를 동원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파헤치기 시작한 지 10여분 후 경찰은 밭에서 5만원권으로 무려 110억원대의 돈뭉치를 찾아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지하경제의 한 단면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였다. 지하경제란 금융기관에 실명으로 예치되지 않아 소유주와 규모가 파악되지 않지만 실제 유통되고 있는 자금을 말한다.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하경제 전문가인 슈나이더 오스트리아 린츠대 교수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27.6%로 추정했다. 지하경제의 탈세규모는 연간 5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화폐수량 방정식을 이용한 분석에 따르면 지하경제 규모는 2011년 250조원을 돌파해 25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1998년 108조원보다 2.5배나 증가했다. 이 통계를 그대로 인정하면 기타 세금은 별개로 치고 세율 10%의 부가가치세만 연간 20조원이 탈루된다. GDP의 4분의 1가량이 지하경제에서 나온다.
이 같은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아이슬란드와 룩셈부르크 제외) 가운데 터키(33.2%), 멕시코(31.7%)에 이어 네 번째로 꼽힌다.
유럽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포르투갈(28.2%), 그리스(26.3%), 이탈리아(23.2%), 스페인(20.5%) 등 이른바 PIGS(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4개 나라)보다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의 지하경제 규모는 각각 7.9%, 8.8%로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지하경제로는 사채, 부동산 투기, 서화·골동품 등의 투자 및 아파트 입주권의 프리미엄, 특정업소 허가에 따르는 권리금 등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뇌물, 매춘, 마약거래, 각종 절도·횡령 및 금융범죄를 원천으로 하는 자금 등도 적지 않다. 이런 돈은 통계에 잡히지 않고 지하경제 내에서 반복 순환된다.
조세전문가들은 지난 2009년 6월 5만원권 지폐가 발행된 후 한때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돈이 대부분 지하경제에 흘러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지하경제 활성화'라는 말을 직접 거론해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언급에 신중한 박 당선인이 굳이 지하경제란 단어를 지목해서 말한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하며 이에 대한 해결 의지가 강력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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