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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시퀘스터 폭풍전야, 평온한 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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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2-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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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송지영 기자=지난 주말 미국의 워싱턴은 조용한 주말을 맞았다. 토요일이었던 23일 산발적으로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기온은 낮지 않았고, 다음날 일요일은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다.

지난주 미국에서 가장 많이 언론에 노출된 소재는 코 앞에 임박한 시퀘스터(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 와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여자친구 살해 혐의 법정이었다. 후자는 미국판 O.J. 심슨(스타 프로 풋볼 선수 출신으로 부인 살해 혐의 받았지만 1995년 무죄 판결 받음)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되는 등 다소 동네 가십성으로 끝날 기미도 있다.

시퀘스터 이슈는 미국 경제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다. 한 푼이라도 연방 정부가 지출을 줄이면 각 주에 전달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웰스파고 증권은 지난주 시퀘스터가 시작되면 국방 부문에서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가 있는 하와이를 시작으로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 메릴랜드 지역이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또한 비국방 부문에서도 연방정부 기관과 조달 사업 비중이 많은 워싱턴 DC 지역에 전해지는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럼에도 워싱턴 시민들의 분위기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스키장에는 사람이 가득 찼고, 쇼핑센터에는 주말 장을 보려는 가족들로 붐볐다. 시퀘스터가 일어나면 큰 타격을 볼 지역으로 꼽히는 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충격이 그 정도 크다면 휴일을 맞아 시위 군중도 있을 법 한데 보지 못했다.

그동안 미국인들은 어떤 일이 닥쳐도 외견상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표현됐다. 바쁜 건널목을 건널 때도 절대 뛰지 않으며, 슬픈 장례식에 갈 때도 검은색 옷을 입지만 겉보기는 갖은 멋을 내기 일쑤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들이 바로 어제 전사해 마음이 찢어지겠지만 CNN방송에 나와 인터뷰하는 부모는 정말 태연해 보인다. 가장 최근에는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참사 직후 장례도 치르기 전에 방송에 나온 한 아이의 부친이나 일부 가족들의 인터뷰 모습도 미국인들의 이러한 특징을 보여준다.

집에서 100세가 다된 노부모와 함께 사는 60, 70세 자식 내외도 마치 예전 한국의 시골에서 보던 그런 인자하고 넉넉한 인상이다. 애로사항이 있을 듯한데 티가 나지 않는다. 뇌성마비 장애인 10대 아들을 휠체어로 매일 산책시키는 부모의 얼굴에는 혹시라도 있을까 하는 어둠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금 워싱턴은 시퀘스터 폭풍전야인데 조용하다. 언론과 정치권만 위기라고 떠드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퓨리서치센터가 바로 지난주에 시행해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인들 대다수가 이번 시퀘스터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당장 예산 삭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체 19개 질문(및 예산분야)에서 단 3개(세계/원조, 국무부/외교, 실업수당 분야)였고, 정치권에서 예산 삭감 여부를 놓고 가장 논란이 많았던 소셜 시큐리티(국민연금), 메디케어(노인 의료보장), 교육, 자연재해 피해 지원 등 대부분 예산에서 미국인들은 예산 삭감보다는 오히려 늘리거나 적어도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이런 분위기라면 “시퀘스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초래한 것”이라며 강하게 버티고 있는 공화당도 막판에 결국 물러설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연말과 연초까지 지속한 재정절벽 협상에서도 공화당은 하원을 중심으로 강하게 버티다가 결국 백악관에 양보했다.

이미 미국인 대다수는 정치권이 끝까지 갈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게다가 2년 후면 그들을 심판할 수 있는 중간선거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초연하게 평소 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번 주 정치권 시퀘스터 협상이 다시 진행될지 큰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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