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시장은 정부와의 정책공조 차원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기대했다. 당·정·청은 금통위에 앞서 수차례 금리 인하에 대한 필요성을 압박하며 정책공조를 압박한 바 있다. 하지만 한은은 이날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에 총액한도대출 제도 개편이라는 미시적 대응으로 화답했다.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한 것은 우선 기존의 경기 인식을 바꾸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날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통해 “국내 경제의 성장세는 미약한 수준을 지속했다”면서 “앞으로 국내경제가 세계경제의 더딘 회복세, 엔화 약세의 영향 등으로 상당기간 마이너스의 GDP(국내총생산)갭을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경기지표는 그리 밝지 않다. 소비와 투자를 중심으로 내수부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2월중 광공업 생산은 전월보다 0.8% 감소했고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6.5% 증가했지만 전년동월과 비교하면 18.2%나 줄었다. 2월중 소매판매는 전월대비 0.1% 감소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동월과 견줘 0.4% 증가해 그나마 호조세를 지속했다.
그럼에도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것은 일부 경제지표에서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인다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2월 중 서비스업과 건설업은 전월대비 각각 1.7%와 7.0% 반등하면서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1.2% 늘었다.
이날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 1월 발표했던 2.8%에서 2.6%로 하향수정했다. 조정폭이 크지 않은 점은 이 같은 경기판단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저금리가 장기화되는 데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한은의 독립성 논란에 따른 부담 등도 금리 동결 결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분석된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달 “저금리가 장기화되는 데 있어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저금리는 자칫 물가상승을 부추기거나 급격한 자금 이탈 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통화정책을 두고 외부 압박이 거세지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논란이 일던 와중에 김 총재는 ‘서별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회의는 주요 경제 및 금융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거시경제정책협의회다. 사전에 금리 향방에 대한 논의가 오갔을 것이란 추측을 차단하고, 한은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17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내든 정부의 재정정책에 따른 효과도 당분간 지켜보자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4월말 추경예산안 의결을 계획하고 있으나, 집행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아울러 북한리스크와 엔저현상의 가속화 등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에 따른 부담은 있었으나, 이 역시 단기적 영향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은은 정부의 경기부양에 총액한도대출 제도의 개편으로 공조하는 방안을 택했다. 총액한도대출은 한은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낮은 금리로 대출 자금을 시중은행에 공급하는 제도다.
이날 한은은 총액한도대출 한도액을 3조원 늘린 12조원으로 결정하고, 금리도 현행 연 1.25%에서 0.5~1.25%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은 이 같은 결정에 따라 은행의 대출공급이 6~12조원 정도 증가할 것이며, 중소기업대출의 금리 감면폭 역시 현행 평균 0.25%포인트에서 평균 0.51%포인트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이 같은 제도 개편과 관련해 “창업초기의 ‘창조형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성장잠재력 고양과 고용창출능력 확충에 기여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총액한도대출 제도 개선이 금리 인하보다는 그 효과가 낮다는 점에서 한은이 경제성장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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