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닉슨과 오바마

아주경제 송지영 기자=버락 오바마(민주) 미국 대통령과 리처드 닉슨(공화, 37대, 1969~1974년 재임) 전 대통령을 비교할 수 있을까? 전자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인권 운동가 출신의 변호사, 상원의원 경력을 자랑한다.

1기에 이어 2기 임기에 들어서 동성애자 인권 보호와 동성결혼 옹호,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 보호와 부유층 과세 증대 등 진보 색깔을 더욱 드린 그의 정책에서 ‘워터게이트’란 치욕으로 하야했던 닉슨 대통령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론이 앞서 나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최근 큰 실수를 저질렀다.

국세청(IRS)이 표적 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보수시민단체 티파티에 관한 세무조사를 2010년부터 했다. 더 나아가 다른 보수 단체나 개인에 대한 세무조사도 선별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법무부가 그동안 몰래 AP통신 기자 100여 명의 통화기록 등을 조사하며 누가 행정부에서 국가기밀을 유출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임이 들통 났다.

지난해 대선 직전 큰 이슈가 됐던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 테러 사건 은폐 의혹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사건 직후 상황을 담은 보고 내용의 이메일이 전격 공개되면서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의도적으로 수정됐다는 지적이다.

닉슨 대통령은 지난 1972년부터 2년간 야당이었던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본부가 있었던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을 도청했다가 결국 1974년 하야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중도 사퇴 대통령의 오명이 아직도 그의 이름에 걸려 있다. 도청 자체도 불법이었지만,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죄가 더 컸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근 물의를 빚은 행적이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온 워터게이트와 견줄 수 있느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일부 언론들은 오바마판 워터게이트로 최근 사건들을 꼬집고 있다.

우선 자신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티파티에 대한 표적 세무감사가 수년간 진행됐다는 점이다. 티파티는 2010년 중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보수 공화당 또는 독립 후보를 대거 의회에 입성시켰다. 이를 잠재우지 않고는 지난해 대선 결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일 이러한 세무조사에 오바마 행정부가 의도적인 입김이 작용했음이 판단되면 그 후폭풍을 오바마가 잠재우기 어려워 보인다.

워터게이트는 통치권자의 정적이었던 민주당에 대한 불법 도청이 골자였다. AP통신 기자들에 대한 통화기록 조사는 마찬가지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언론의 자유와 권한, 의무가 철저히 보장되는 미국에서 보기 드문 장면임은 틀림없다.

닉슨의 워터게이트도 처음에는 단순 강도, 담당자 문책으로 끝나는 듯했다. 오바마는 IRS 청장을 지난주 해임했다. 법무부도 정부기밀 누설자(기자에게는 정보원)를 색출하기 위해서였지,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지난주 말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와 닉슨을 비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역사를 공부하고 답하라며 반박했다.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지적이었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이러한 행태가 계속되면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는 월권을 철저히 경계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은 할 수 없다. 국민을 위해 자신의 권한만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대통령이다. 최근 벌어진 미국의 이러한 사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행정부나 언론이 어떤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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