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인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고인은 성장중심의 경제개발을 주도한 '서강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수출장려와 인프라 구축에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던 '무역입국'의 주역이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 14년 동안 정부 관료생활을 하며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다. 이때 대한민국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왕조시대에도 임금과 재상이 길게 호흡을 맞추며 국사를 돌본 기록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황희 정승이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종 때 출사해 손자인 세종 때까지 공직생활을 했다. 한때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 문제로 남원에서 유배생활도 했지만 재상만 무려 20년을 역임했다.
공교롭게도 이때가 조선 초기 최대로 국운이 융성하던 시기였다. 임금의 공이 가장 크다면 그 다음은 재상의 몫일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은 김황식 전 총리의 2년 5개월이 가장 길다. 김 전 총리도 재임기간 부드럽고 합리적이며 검소했지만 때로는 강단있는 모습도 보였다.
제주해군기지 건설·기업형슈퍼마켓 규제·과학벨트 입지 선정 같은 대형 현안을 놓고 대통령과 함께 원만한 국정 조정 능력을 보였다.
산업화 이후 우리 경제 규모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 정세와 경제 상황의 위태로움은 1969년이나 2013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총리가 단명해 자주 교체되면 가뜩이나 임기도 짧은 대통령이 제대로 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강단있는 책임 총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남덕우 전 총리의 명복을 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