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발생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남기 전 홍보수석의 바통을 이어받아 새 정부의 두 번째 홍보책임자가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 "그의 말은 한 번도 제 생각과 다른 적이 없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박심(朴心)'을 정확히 읽어내는 핵심 최측근이다.
취임 100일 이후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선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책을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잘 알리는 홍보·공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선 일찌감치 이 수석의 수평 이동이 점쳐졌다. 이 수석은 청와대 기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소통이 잘 되는 인사로 첫손 꼽힐 정도로 대언론 관계가 원활하고, 친화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수석의 홍보라인 투입은 박 대통령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근혜정부의 불통 이미지는 이남기 홍보수석-윤창중 대변인으로 이어지는 홍보라인의 역할 부재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수석은 '의리와 뚝심의 사나이'로 통한다. '호남의 노무현'으로도 빗대어진다. 새누리당 불모지 광주에서만 1995년 시의원, 17·19대 총선에 출마해 세 번 모두 고배를 마셨다.
2004년 17대 총선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어려운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전화로 격려했다. 총선 직후 오찬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 달라"며 열변을 토하는 이 수석에게 박 대통령은 "어쩌면 그렇게 말씀을 잘 하느냐"며 며칠 뒤 당 수석부대변인에 앉혔다. 그때부터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 됐다.
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이후 정치적 칩거 시기에 사실상 그의 '입' 역할을 도맡았다. 박 대통령의 의중과 행보는 대부분 그를 통해 외부에 전달됐다.
전 매체를 홀로 상대했던 이 수석은 하루에 200여통의 전화를 받기 위해 휴대전화 배터리를 12개씩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이 수석은 지난해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임명한 김병호 대선캠프 공보단장의 활동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선거를 3개월 앞두고 전격적으로 공보단장으로 임명돼 대야 공격수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당선인 정무팀장을 거쳐 국회와 여야 정치권과의 소통을 책임지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됐다.
정부조직법, 인사 난맥을 둘러싼 야당과의 갈등 속에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소통을 잘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여야 지도부 초청 만찬, 국회 상임위 야당 간사단 초청 만찬 등을 성사시키며 '식사 정치'에 크게 일조했다는 평가다.
한편 후임 정무수석에는 김선동 정무비서관이 승진 인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 후보군으로는 3선 출신의 김학송 전 의원을 비롯해 재선 출신의 이성헌 전 의원, 초선 출신의 권영진, 현기환 전 의원 등 친박계 인사들이 우선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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