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출구전략 쇼크로 시장에 불안감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경제성장 전망 하향조정 등 부진한 경제지표가 공포로 몰아붙였다. 신흥국 주식시장에 밀려들었던 핫머니가 일제히 빠져나가면서 증시로 충격이 이어진 것이다. 대규모 양적완화로 핫머니 유입을 걱정하던 신흥국들은 반대로 통화가치 하락을 걱정하게 됐다. 지난해 유로존 재정위기로 좌절했던 세계 경제가 올해는 양적완화 출구라는 새로운 적을 맞닥뜨린 것이다.
◆ 美 출구전략에 달러화 회귀… 세계 경제성장 전망↓
주요 중앙은행들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앞다퉈 양적완화를 실시했으나 이를 철회할 수 있다는 공포가 역습했다. 전 세계에 풀렸던 달러화가 미국으로 회귀, 신흥국에서 탈출 속도가 빠르게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시중금리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했다고 우려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회의에서 양적완화 축소론을 제기하면서 캐리 트레이드 유인이 감소, 가장 먼저 채권시장이 휘청했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이달 초 이후 60bp 상승했다. 지난달 1일 1.63%로 떨어졌던 국채 금리가 이달 11일 2.29%에 도달했다. 채권 금리(수익률) 상승은 채권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얘기다.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이달 들어 0.8%대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증시는 일본은행(BOJ)이 지난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금융완화책을 보류하고 정부의 성장전략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평가되면서 추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아베노믹스 정책인 세 번째 화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폭락세를 이끌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세 번째 화살'은 기업투자 촉진을 위한 세금 감면조치를 시행하겠다는 정책이다.
BNP 파리바의 슌 마루야마 수석 일본증시 전문가는 "일본은 선진국이지만 주식시장은 핫머니로 주도되는 신흥시장과 같다"며 "일본을 포함한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핫머니가 급격하게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일본 주식시장에 유입된 800억 달러 가운데 80~90%는 단기 자금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세계은행은 이날 전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도 하향조정했다. 지난 1월에만 해도 세계 경제성장률을 2.4%로 전망했으나 2.2%로 하락시켰고, 내년 경제도 3%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각종 경기지표가 부진한 가운데 경제성장 전망치마저 떨어지면서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5월 중국 2분기 제조업 경기, 수출입, 신규대출, 산업생산 등 경제지표가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서 경기회복세 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대됐다.
◆ '버블 위험' 신흥시장, 경고 대상으로 전락
세계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신흥국 시장은 경고 대상이 됐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2조 달러에 달하는 돈을 풀면서 신흥국에 유입된 자산 거품이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연준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자금은 순식간에 꺼져가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신흥시장들이 누렸던 자본유입도 막을 내렸다는 얘기다.
펀드리서치업체 EPFR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5일까지 선진국 채권형 펀드에서 110억 달러(약 12조5000억원)가 빠져나가 주간 단위로 사상 최대 자금 유출을 기록했고, 신흥국 채권형 펀드에서도 15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브라질의 헤알화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랜드화 가치는 달러 대비 4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미국 금리와 이머징 국가 금리차가 감소해 자금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과 일본의 국채시장이 안정되면 신흥시장의 신뢰도 다시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됐다. 일본 투자자들이 엔 약세로 인해 해외자산의 매각을 통해 이익을 내면서 시장의 변동성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
이날 세계은행의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를 제출한 앤드루 번스는 "이들 국가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박과 자산가격 거품 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고는 신흥시장의 채권가격과 통화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투자자들이 미국의 기준금리가 영원히 제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이 같은 하락세를 맞게 된 것이다.
세계은행은 빠르게 성장한 개발도상국들이 경기과열로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재정정책을 조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동남아시아 가운데 필리핀 태국 베트남를 비롯해 남미의 콜롬비아 에콰도르, 아프리카의 가나 등을 지목했다. 세계은행의 카우시크 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년 전처럼 거대한 하강리스크를 안고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며 "수요가 부족해 성장이 둔화되진 않지만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전 거품 붕괴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표적인 신흥국 브라질·인도·러시아·터키·남아공 등의 경제 잠재력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준의 초저금리 기조와 이에 따른 막대한 자산 매입이 사라진다는 새로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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