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에 설치된 로댕의 지옥의 문을 지키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카이카이와 키키를 사이에 두고 다카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절묘한 조화다.
죽음앞의 인간군상을 표현한 로댕의 '지옥의 문'과 그 양옆을 지키는 알록달록 캐릭터. 흰색과 분홍색으로 무장한 '인형'들이 들고 있는 삼지창같은 지팡이 끝에는 귀여운 모습의 해골 3개가 달려있다.
'지옥의 문'을 지키는 이 캐릭터는 '카이카이'와 '키키'다. 경쾌하게 발음되지만 일본어로 각각 '괴상함'과 '기이함'을 뜻 하는 두 캐릭터는 일명 '귀신'들이다.
'현대적으로 변신한 유령'과 클래식한 '지옥의 문'은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며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유쾌하게 허문다.
마치 큰 법당으로 가기위한 관문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연출된 '카이카이'와 '키키'는 무라카미 다카시(51)의 분신들.
2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기자들을 만난 무라카미 다카시는 "예술은 신기하다"며 말을 뗐다.
"이 전시장안에 로댕의 리얼리즘 최고의 조각을 꼽히는 작품과 내 작품(벗은 여자인형등)이 함께 전시된 것을 보면서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는 다카시는 "내가 표현하는 예술은 로댕의 조각과 함께 연출된 내 인형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오타쿠 문화’를 미술이라는 고급문화에 접목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는 일본 최고 팝아티스트로 '일본의 앤디 워홀’로 불린다.
스스로도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라고 말하는 그는 오타쿠들의 하위문화를 예술로 끌어올렸다.
애니메이션·만화 이미지에 집착하는 그는 “일본 주류 문화는 이미 서구 문화에 의해 오염됐다. 자생적인 오타쿠(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 하위문화가 더 일본적"이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피규어 '미쓰 코코'는 일본의 문화적 단면을 보여준다. 남성들의 성적 로망을 극대화한 '미쓰 코코'는 빵빵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에 비정상적으로 길게 쭉 뻗은 다리를 자랑한다. '섹스돌'같다는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는 미쓰 코코는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다카시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오타쿠들 사이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오타쿠들의 시각에선 제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 일본 문화의 표면적인 것만 차용해 서양적 예술 세계와 결탁한 셈이죠. 그들은 제가 세계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곤 합니다.”
일본의 앤디워홀로 불리는 쿠라카미 다카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
자신의 인형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과 달리 질문을 받을때마다 동그란 안경너머의 눈을 꾹 감고 말을 잇는 그는 '상상의 세계'에 있는 듯 했다.
귀엽고 앙증맞은 일본의 '가와이 정서'에 기댄 다카시는 2000년대 이후‘수퍼플랫’이라는 단어를 주요 키워드로 삼아왔다.‘수퍼플랫’이란 두께도 깊이도 없는, 현대 문화의 경박함을 비판하려고 쓰는 말이다.
'수퍼플랫'은 "세계 문화와 융합되지 않는 전후(戰後) 일본 문화의 무책임성도 꼬집는다"는 것.
만화같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작품은 전통 일본화가 뿌리에 있다.
도쿄예술대학에서 7년간 전통 일본화 전공을 공부하며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평면성과 양식성이 19세기 매너리즘 경향의 회화와 우키요에 전통에 근거함"을 주장한다.
전통과 대중문화를 접목한 그의 대표 캐릭터, 쥐를 닮은듯한 '도브(DOB)'는 만화에만 머문 미키마우스나 도라에몽을 넘어서 예술세계로 진입했다.
'다카시의 도브'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쓰윽 웃고 있다가도 속을 알 수 없는 웃음과, 뽀죡한 이빨을 보이며 사악함을 드러낸다. 무의식과 본능을 드러내며 분열된 주체를 보이는 탐욕스런 현대인의 표상이다. 일본스러운 '변태같고 만화같은' 작품이 세계 미술시장을 장악한 이유다.
그는‘가장 비싼 생존 일본 작가'다. 2008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작품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가 약 1500만달러(약 170억원)에 팔렸다.
활짝 웃고 있는 꽃무리위에 웃고 있는 '영심이' 같은 남자가 무라카미 다카시다./사진=박현주기자 |
2002년 명품업체 루이뷔통과 협업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수퍼플랫 플라워'는 루이뷔통 캐릭터로도 인기다.
“작가로서 성공했냐고요?. 성공은 잡힐듯, 잡힐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난 아직 10%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앞으로 머니게임같은 예술을 벗고,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예술이 점차 전문화 세분화되는 시대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예전 종교가 그랬던처럼 마음의 문제에 집중하며 작업하고 있다.”
4일부터 플라토에서 여는‘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는 아시아 첫 회고 개인전. 알록달록 캐릭터와 함께하는 '이상한 나라'로의 초대다.
2013 최신작 '순백색 복장의 도브'를 비롯해 등신대 크기의 금발 '미스 코코', 수퍼플랫 플라워 등 회화·조각·사진·비디오 39점이 나왔다. 4일 오후 4시 삼성생명 컨퍼런스홀에서 무라카미 다키사와의 대화가 열린다. 전시는 12월8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일반 5000원, 초중고생 4000원. 1577-7595
남성들의 성적인 판타지를 극대화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미쓰코코. 일본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 유니폼을 입은 코코는 오타쿠의 감성이 그대로 들어있다./사진=박현주기자 |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