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태구 기자=이탈리아의 대표 자동차 브랜드라고 하면 생각나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사상 최강의 스포츠카로 대변되는 페라리, 그리고 피아트다. 그 중에서도 피아트는 이탈리아 자동차의 전형적인 심볼로 자리잡은 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다. 무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오며 이탈리아 산업화의 선구자 역할을 해 왔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활약이 이어져 오고 있다.
피아트가 탄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이다. 피아트의 설립자는 조반니 아넬리다. 이탈리아 빌라 페로시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유럽 여러나라 중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업이 가장 낙후된 것을 보며 사업가가 될 결심을 한다.
그는 “자동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나 경주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탈수 있도록 값싸고 성능이 좋아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1899년 7월 11일, ‘토리노에 공장을 둔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Societa Anonima 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후 1917년 이것들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금의 FIAT로 불리게 됐다.
피아트는 전쟁 때문에 흥했고 전쟁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었다. 피아트는 세계 1차 대전 당시 군용차, 비행기 등 군수사업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피아트의 급성장과 함께 조반니 아넬리는 피아트 회장이 됐고 첫 4인승 차량인 509 등 다양한 신모델을 출시했다. 1904년에는 비스카레티에 의해 파란색 배경을 가진 타원형의 첫 피아트 로고가 탄생했다.
1934년과 1936년, ‘바릴라’와 ‘토폴리노’의 출시는 피아트가 소형차로서 본격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계기를 제공했다. 바릴라는 연비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생산된 최초의 모델이었고, 토폴리노는 1948년 4인승으로 바뀐 뒤 1955년 단종될 때까지 70만대에 이르는 생산을 통해 이탈리아의 국민차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 당시 상용차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승용차의 생산은 급격이 감소했고 피아트의 어려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1948년 전쟁으로 파괴된 공장을 복구, 재가동을 통해 매출이 증대했다. 1957년에는 누오바 친퀘첸토(Nuova 500)이라는 이름으로 피아트의 대표 차인 친퀘첸토(500)가 첫 출시되며 유럽 경차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이 차는2007년 출시 이후부터는 2012년 11월까지 82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1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폭 넓은 소비자층에게 사랑 받아왔다.
1979년에는 자회사인 피아트, 란치아, 오토비앙키, 아바스, 페라리를 포함해 Fiat Auto S.p.A 라는 이름으로 재탄생, 1984년에는 마세라티로부터 알파로메오까지 인수하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로 더욱 성장하게 된다. 그 때 피아트 그룹은 다른 신설 계열사를 설립하며 그룹의 성장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닥친 경제불황은 다시 한번 피아트 그룹에 위기를 가져왔다. 특히 2003년 아넬리가의 주요인물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2004년 부도위기에 까지 몰리게 됐다. 그 때 현재 크라이슬러 그룹 LLC의 회장이자 피아트 S.p.A의 CEO기도 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등장하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회사를 2년만에 흑자 회사로 탈바꿈 시켰다. 또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해외 진출의 기반을 다져가며 신진 디자이너들을 영입, ‘푼토’ 등의 차를 출시했고 2007년 브라보를 런칭하면서 현재의 로고를 최초로 적용하였다.
이후 2009년 피아트는 크라이슬러를 인수했고 합리적인 가격과 빼어난 디자인의 소형차를 앞세워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층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리고 피아트의 차는 여전히 매력적인 스타일링과 독특한 엔진으로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우리 삶의 질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화려한 헤리티지와 역사까지 함께 설명해 주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