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지난해 이후 문을 닫는 조선소들이 급증하면서 과잉투자에 따른 재앙이 현실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호황의 수혜를 입으며 급증했던 조선소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경우 안갯속인 세계 경제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연쇄 폐업 도미노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정작 10년을 넘기지 못한 채 침몰하는 조선소 수가 늘어나며 그 여파가 국가경제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5년 만에 4분의 1 감소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조선시황을 살펴볼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클락슨 리포트의 조선소별 수주현황을 보면 지난 5년여간 큰 변화가 있었다.
클락슨 리포트는 전 세계 주요 조선사들로부터 매월 접수하는 수주량·수주잔량·인도량 등을 집계해 통계를 작성하는데, 조사 대상 조선소 수가 2008년 말 629개에서 2013년 6월 말 현재 474개로 155개사가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후부터 지금까지 조사 대상 조선소의 4분의 1(약 24%)이 문을 닫거나 일감이 없어 조업을 중단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에는 무려 97개 조선소가 통계 대상에서 제외돼 '조선산업 암흑기'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다. 올 상반기에만 퇴출된 조선소 수도 16개에 달하는 등 하반기 이후에도 추세가 이어져 2014년까지 통계 대상 조선소 수는 400개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조선소들의 폐업은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예를 들면,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통계를 살펴보니 지난 2003년 74개에 달했던 국내 조선소 수는 2011년에 55개로 19개가 줄었다. 폐업한 조선소는 리포트에 포함되지 않는 중소업체들로, 집계 중인 지난해 통계를 감안할 경우 문을 닫은 중소 조선소 수는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소 조선사의 사정은 수주를 늘리고 있는 대형 조선소 수(9개)의 그늘에 가려 드러나지 않고 있다.
◆수주잔량 8년 전 수준까지 ↓, 상위 4개사가 25% 차지
지난해 이후 조선소 폐업이 급증하는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미 확보한 물량을 모두 소진하는 동안 일감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6월 말 기준 전 세계 조선소의 수주잔량은 9017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8년 4개월 전인 2005년 2월 9347만CGT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조만간 9000만CGT 붕괴도 거론된다.
상위권 조선소들의 싹쓸이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클락슨 리포트 기준 상위 166개 조선소가 전체 수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95%대에서 올 6월에는 97%대까지 상승했다. 조선사별로 살펴보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올 5월 현재 한국의 빅3가 포함된 상위 4개사가 이 기간 전체 발주량의 25%를 차지했다. 반면 후발 296개 조선사들은 10%의 발주량을 놓고 나눠먹기를 하고 있다.
◆지자체 경제 전체가 흔들
최근 들어 선가 상승을 기반으로 조선업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부 업계를 제외하면 큰 의미가 없다는 반응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수주를 주도하는 선주사들은 대형 조선사들과 주로 거래하는 메이저 선주들"이라며 "선주사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중소형 조선사에 발주를 할 선주들은 돈을 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 조선사들의 도미노 폐업이 본격화될 경우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도 상당하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소는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산업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인데, 현장에서 일하는 수만명의 본사·협력사 임직원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들의 가족과 조선소 주변 상가와 식당, 은행 등 금융권 등이 모두 조선소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웬만한 지역 도시 하나를 먹여살리고 있다"며 "이런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 실업률 상승, 가계경제 추락, 지역상가 몰락 등으로 이어져 해당 지역경제 시스템 자체가 받을 충격이 엄청나고, 중앙정부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부작용 가시화
1600여개에 달하는 조선소를 보유한 중국에서 우려했던 과잉투자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중국 장쑤성에서 최대 규모 민영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는 룽성중공업은 최근 수개월 동안 전체 인력의 40%인 8000명을 해고했다. 핵심 사업인 철광석 운반용 선박 수주량이 2011년 24척에서 지난해 2척으로 급감하는 등 회사 손익구조가 심각해진 때문이다. 이 회사는 남은 근로자에게도 제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해 대규모 파업사태에 직면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조선업계 불황이 지속될 경우 앞으로 3~5년 안에 (중국 내) 조선소의 30%가량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왕진롄 중국조선협회 비서장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의 경제 둔화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조선산업이 구조조정에 실패해 연쇄부도가 일어난다면 '차이나 리스크' 확산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