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입', '복심', '정치적 경호실장'으로까지 불리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얘기다.
그는 기자들이 향후 거취를 물으면 "청와대에서 나가면 남은 인생은 가족들과 함께 조용히 종교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자신의 모든 힘을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쏟아붓고 박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영원한 박근혜맨'으로 자신의 정치인생도 마감하겠다는 비장한 각오인 셈이다.
"박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몸을 던질 줄 아는 인물"이라는 평가답게 홍보·정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박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며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귀태' 논란처럼 박 대통령이 불합리한 공격을 받을 때나 청와대가 곤경에 처했을 때 이 수석은 가장 먼저 앞장서서 '공격수' 역할을 자임했다.
또 그가 정무수석에서 홍보수석으로 옮긴 후 청와대 홍보라인이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다. 청와대 사람들은 그 이유로 이 수석의 근면과 성실성, 신뢰를 꼽는다.
이 수석은 지난 6월 3일 홍보수석에 임명된 직후 "매일 오전과 오후 춘추관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현안이 있든 없든, 폭염이나 폭우가 쏟아지더라도 매일 아침 7시20분, 오후 5시쯤이면 어김없이 춘추관을 찾아 브리핑을 한다.
기자들의 질문에 결코 어설프게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반드시 관련 수석이나 장관에게 전화를 해 내용을 파악하고 난 뒤에서야 답변을 준다. 춘추관장실 벽에 화이트보드를 걸고 기자들의 공개질문을 받아 이를 처리한다. 이 때문에 정확도와 신뢰도는 거의 100점에 가깝다.
이 수석은 "소통과 서비스, 현장공보 이 세 가지가 공보업무를 하면서 줄곧 가진 소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이 수석은 '박근혜정부 그림자권력 1위'에 오를 정도로 '왕수석'이라는 별칭까지 붙었지만, 실제 권력이나 금전 욕심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석의 재산은 4억4543만원으로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가장 적다.
그는 가난을 뼈저리게 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전기가 안 들어오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학교에 다녀야 했던 시골 촌놈으로 자랐다. 초·중·고·대학까지 수학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고교 시절을 갓 결혼한 작은집 삼촌의 문간 단칸방에서 시작했고, 대학 시절 서울에 올라와서도 친척집 셋방, 지하방·옥탑방을 전전했다. 그는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때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말 여름휴가 때 암 투병중인 작은아버지를 매일같이 문안했다고 한다. 휴가비를 보태 병원비 전액을 계산했다는 후문이다. 달랑 방 2칸짜리 셋집에서 이 수석을 포함한 큰조카 셋과 딸자식 둘을 거두면서 고단한 서울생활을 견뎌냈던 작은아버지 내외께 평생의 은혜를 갚고픈 그의 마음을 담았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이 수석을 보면 참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그런 에너지와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를 잊지 않는 겸손함, '옳다고 믿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 바로 열정의 근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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