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화사] |
"보시라이는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가입해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했다. 그는 당시 지도부 거주지인 중난하이에 쳐들어가 류샤오치 당시 국가주석 등을 비판 투쟁했다." <일본 아사히신문 중문판 2012년 6월 25일자 보도>
"보시라이는 문화대혁명 당시 부친인 보이보 전 중국 부총리의 가슴을 짓밟는 등 폭행하며 반인륜적인 행위를 행했다." <대만 핑궈르바오 2012년 12월 8일 보도>
"다롄시 시장 재직 후 얼마 안돼 전용 관용차를 배분 받았을 당시 보시라이는 자동차 번호판 맨 뒷자리가 ‘1’이 아니라고 대노했다. 그는 결국 ‘00051’이라는 특수 번호판을 달았다. ‘51’은 중국어로 ‘내가 제일’이라는‘吾一’고 발음이 같다." <일본 아사히신문 2012년 6월 26일 보도>
"다롄시 시장 재직 시절 시내 공원이나 광장을 신축할 때에는 꼭 소 모양 석상, 동상으로 장식하도록 요구했다. 심지어 다롄시 하수도 맨홀 뚜껑도 소 모양으로 장식하도록 했으며, 외부에 제공하는 선물도 모두 소 모양 공예품으로 했다. 이는 보시라이가 ‘소띠’였기때문으로 그는 이런 미신들이 자기 벼슬길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일본 아사히 신문 중문판 2012년 7월 6일 보도>
"보시라이는 상무부 부장 재임 시절 그의 미국 파트너들은 모두 그가 잘난척하고 말도 직설적이고 거칠어서 비호감이라 여겼다." <미국의 소리, 2013년 8월 13일 보도>
"보시라이는 거액의 뇌물을 챙기며 호화 생활을 유지했다. 보시라이는 수백만 위안, 그의 아내 구카이라이는 2000만 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 중문망 2012년 9월 29일 보도>
"보시라이가 350만 달러 뇌물을 챙겨 프랑스 칸에 호화별장을 매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 8월 6일 보도>
"보시라이는 영국 런던, 미국 매사추세츠에도 호화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13년 8월 11일 보도>
"보시라이 다롄시 시장 재임 시절 다롄시 정부기관 사업자금 500만 위안 자금의 행방이 묘연한 것은 보시라이가 횡령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 2013년 8월 6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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