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언론이 바라본 보시라이…"잔혹하다", "비호감"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3-08-20 15:0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과거 사치ㆍ부패 행각 종합해 정리

[사진=신화사]
22일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재판을 앞두고 홍콩 펑황왕이 과거 해외 매체들이 보도한 보시라이와 관련된 각종 보도들을 종합해 정리했다. 과거 매체들은 보시라이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으로 잔혹하게 활동하던 상황, 사치행각, 거친 언행과 성격, 가식적인 모습 등을 낱낱이 보도했다.

"보시라이는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가입해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했다. 그는 당시 지도부 거주지인 중난하이에 쳐들어가 류샤오치 당시 국가주석 등을 비판 투쟁했다." <일본 아사히신문 중문판 2012년 6월 25일자 보도>

"보시라이는 문화대혁명 당시 부친인 보이보 전 중국 부총리의 가슴을 짓밟는 등 폭행하며 반인륜적인 행위를 행했다." <대만 핑궈르바오 2012년 12월 8일 보도>

"다롄시 시장 재직 후 얼마 안돼 전용 관용차를 배분 받았을 당시 보시라이는 자동차 번호판 맨 뒷자리가 ‘1’이 아니라고 대노했다. 그는 결국 ‘00051’이라는 특수 번호판을 달았다. ‘51’은 중국어로 ‘내가 제일’이라는‘吾一’고 발음이 같다." <일본 아사히신문 2012년 6월 26일 보도>

"다롄시 시장 재직 시절 시내 공원이나 광장을 신축할 때에는 꼭 소 모양 석상, 동상으로 장식하도록 요구했다. 심지어 다롄시 하수도 맨홀 뚜껑도 소 모양으로 장식하도록 했으며, 외부에 제공하는 선물도 모두 소 모양 공예품으로 했다. 이는 보시라이가 ‘소띠’였기때문으로 그는 이런 미신들이 자기 벼슬길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일본 아사히 신문 중문판 2012년 7월 6일 보도>

"보시라이는 상무부 부장 재임 시절 그의 미국 파트너들은 모두 그가 잘난척하고 말도 직설적이고 거칠어서 비호감이라 여겼다." <미국의 소리, 2013년 8월 13일 보도>

"보시라이는 거액의 뇌물을 챙기며 호화 생활을 유지했다. 보시라이는 수백만 위안, 그의 아내 구카이라이는 2000만 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 중문망 2012년 9월 29일 보도>

"보시라이가 350만 달러 뇌물을 챙겨 프랑스 칸에 호화별장을 매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 8월 6일 보도>

"보시라이는 영국 런던, 미국 매사추세츠에도 호화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13년 8월 11일 보도>

"보시라이 다롄시 시장 재임 시절 다롄시 정부기관 사업자금 500만 위안 자금의 행방이 묘연한 것은 보시라이가 횡령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 2013년 8월 6일 보도>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아주NM&C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