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규진 기자= 주요 신흥시장들은 외환위기를 직면하자 환율 방어태세로 돌입하고 있다. 특히 자금이탈에 취약한 5개국(F5)인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환율가치가 급속도로 추락하면서 금리인상·차입 감축 등 비상대책을 내놓았다.
F5의 환율시장은 공포 그 자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임박해지면서 미국 국채 금리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연 3%를 육박하고 있다. 장기 금리 인상은 F5 환율시장의 유동성에 치명적이다. 신흥시장으로 흘러들었던 저금리 달러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UBS의 바누 바웨자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장기 금리 상승이 신흥국 전체를 망쳤다"며 "장기 금리가 계속 오르면 고통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F5의 통화가치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JP모건은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된 가운데 높은 인플레이션, 성장 약화, 외채 증가 등까지 겹친 데다 자금마저 빠져나가면서 F5 환율시장이 상당히 취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F5의 경상수지 적자가 위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1년 동안 누적 적자규모가 109억~882억 달러에 이른다. 인도의 경우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이 4.8%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출구전략에 대해 언급한 올 5월 22일 이후 브라질의 헤알화와 인도 루피화 가치는 각각 14.9%, 11.7% 떨어졌다.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6.9%), 남아공의 랜드화(5.8%), 터키의 리라화(5.3%)도 하락했다. 이번주에만 4% 이상 하락한 루피화는 2011년 8월보다 무려 27%나 추락했다. 헤알화와 랜드화는 올해 들어서만 18%, 20% 하락했다. 리라화는 올해 들어 9.6%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루피화 가치가 10.5%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통화가치가 추락하며 신흥국들은 충격을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터키는 이례적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20일(현지시간) 오버나이트 금리를 기존 7.25%에서 7.75%로 올렸다. 올 5월까지만 해도 금리를 낮추는 추세였다. 브라질도 금리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알레샨드리 톰비니 브라질 중앙은행장은 19일 "시장이 금리인상을 과도하게 기대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라질 중앙은행이 연말까지 긴축기조를 유지하고 환시장에 계속 개입할 것으로 관측했다.
또한 신흥국 정부와 기업은 눈에 띄게 차입을 줄이고 있다. 올 6월 이후 정부와 기업의 채권 발행은 424억 달러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951억 달러에 달했었다. 지난 2008년 12월 이후 최저 발행규모다. 이는 신흥시장의 자본이탈을 명백하게 확인시켜 준다. JP모건은 이들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을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그동안 환 방어를 통해 보유 외환이 2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밑돌았다.
인도는 경상적자를 메우기 위해 루피화의 국외채권 발행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그 동안 외국인이 인도에서 루피화 채권을 살 수 있도록 허용해 왔지만 그러기 위해선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루피화 국외채권이 발행되면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 다만 인도 정부와 중앙은행이 루피화 가치 회복을 겨냥해 취한 조치가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저널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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