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태구 기자=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를 써온 장본인이다. 오늘날에는 현대차 형제 회사로 불리우고 있지만 사실 알고보면 기아차는 현대차보다 훨씬 먼저 태어났다. 말 그대로 기아차의 역사는 국내 자동차의 역사다.
기아자동차의 전신은 1944년 12월 세워진 경성정공이다. 원래 경성정공은 자전거를 만들던 곳이다. 경성정공의 설립자인 고 김철호 회장이 1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자전거 기술을 배우고 난 뒤 1944년 고국으로 돌아와 자전거 부품 제조공장인 경성정공을 설립했다.
![]() |
K-360 |
김 회장은 1952년 회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변경하고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했다. 지금의 삼천리자전거를 있게 한 모델로, 오히려 현대차보다 더욱 뿌리 깊은 형제기업인 셈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62년 일본 마쓰다자동차와 기술제휴로 배기량 356cc의 3륜 화물차 K-360과 T600을 생산했다.
소형 삼륜 트럭인 기아차 마스터 T600은 일본 3륜 트럭 생산업체인 동양공업과 제휴해 개발, 생산한 최초의 국산 트럭으로 당시 ‘삼발이’로 불리며 내수 산업 호황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다.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 제40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후 1974년 마쓰다자동차의 파밀리아의 차체를 바탕으로 국산 최초의 승용차 브리사를 탄생시켰다.
![]() |
봉고 |
기아차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전설의 ‘봉고’와 ‘프라이드’가 나오면서 부터다. 특히 봉고는 기아차가 정부의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 등으로 존폐위기에 놓였던 1980년대 초반에 눈부신 판매로 ‘봉고 신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기아차는 1990년대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기아차는 1998년 현대차에 합병, 2001년 4월 현대자동차그룹으로 편입되어 현대차의 형제가 됐다.
이후 기아차는 현대차그룹의 든든한 지원 아래 재기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아차는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리던 피터 슈라이어와 만나며 기아차만의 독특한 색깔을 내기 시작한다. 기아차는 2006년 9월 파리모터쇼에서는 현재의 ‘디자인 기아’가 있게 한 디자인 경영을 글로벌 시장에 공식 선포했으며 이후 기아차만의 독자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Design Identity) 정립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당시 기아차는 품질·마케팅·기술·가격 등 기존 역량만으로는 선진업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차별화된 경쟁 우위 요소로 디자인을 선택했다. 또한 ‘현대차와 형제차’라는 인식을 넘어 기아차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디자인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결정하고 전사적인 디자인경영을 추진해 왔다.
그리고 나온 것이 ‘K 시리즈’. K3·K5·K7 등은 기아차만의 혁신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며 나오는 족족 대히트를 쳤다. 특히 K5는 출시와 동시에 우리나라 중형차를 대표하던 쏘나타를 앞지르는 이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후 기아차는 각종 사무용품과 문서 서식 등에도 디자인 슬로건을 적용해 디자인 경영을 생활화하고 있으며, 이로써 기아차는 그 동안 추진해온 디자인경영의 성과와 창의적 마인드를 직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보다 차별화되고 강화된 기아 브랜드를 내부적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세계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를 주도하는 브랜드로 평가받으며 지난 2007년 11억 달러의 브랜드 가치 수준에 불과했지만 5년여 만에 약 273%에 달하는 브랜드 가치 성장을 이뤄내며 유수의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