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향을 탐하는 추석맞이 전통주 순례>조선의 왕들이 마시던 술, 해남 진양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3-09-20 09:1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투명하고 노란빛을 띠는 해남 진양주-한국관광공사 제공


아주경제 기수정 기자=조선 시대 임금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술이 해남 진양주다. 이름난 가양주들이 왕에게 진상한 것이라면, 해남 진양주는 궁궐에서 일반으로 전해진 것이라 특별하다.

구중궁궐에서 빚던 술이 해남 땅까지 내려온 사연은 이렇다. 200여 년 전인 조선 헌종 때 술을 빚던 궁녀 최씨가 나이 들어 궁에서 나간 뒤 사간 벼슬을 지낸 김권의 후실로 들어간다. 최씨는 술 빚는 법을 김권의 손녀에게 가르쳐주었고, 김권의 손녀가 해남의 장흥 임씨 집안으로 시집가면서 임씨 집안 여인들에게 전수된 것이다.

다른 첨가물을 섞지 않고 찹쌀과 누룩으로 빚는 해남 진양주는 꿀을 섞은 듯 달콤하고 부드럽다.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노란빛을 띠어 일반적인 청주와 확연히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코끝에 닿는 향이 은은하고, 입안에 머금으면 청주 특유의 시큼한 맛 대신 달콤함이 전해진다. 목으로 넘기는 느낌도 부드럽다. 과연 왕이 마시던 술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때 밀주 단속 때문에 쉬쉬하며 빚어 먹던 해남 진양주는 지난 1994년 1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되면서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2010년 국비 지원을 받아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었다. 자동화 설비를 갖추었다고 해도 해남 진양주 기능보유자 최옥림 씨와 남편 임종모 씨의 손을 일일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자칫 방심하면 술이 아니라 식초가 되기 때문이다.

해남 진양주는 청주 빚을 때 시루에 쌀을 쪄서 지에밥을 짓는 일반적인 방법과 달리 찹쌀 죽에 누룩을 섞어 밑술을 만든다. 3~4일 뒤에 찹쌀지에밥을 지어 1차 발효시킨 밑술과 섞는데 이때 물 3~5되(5.4~9ℓ)를 보충한다. 1차 발효 후 2차 발효까지 26일 정도가 걸리며, 발효된 누룩이 뜨면 일일이 주걱으로 저어야 한다.

여기에 쓰는 물도 중요하다. 마을 뒤를 병풍처럼 감싸는 흑석산은 월출산의 끝 줄기에 해당하는데, 바위의 색깔이 월출산과 같은 자줏빛이다.

여기에서 흘러내린 물이라야 해남 진양주의 진정한 풍미를 낼 수 있다. 200년 전 술을 빚을 때부터 사용하던 마을의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지금은 200m 깊이의 암반을 뚫어 거기에서 난 물을 쓴다.

궁녀 최씨에게서 비법을 전수한 손녀가 친정에 직접 빚은 술을 가져갔더니 할아버지 김권이 “네가 빚은 것이 더 낫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을의 물이 술의 풍미를 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사나 집안 잔치 때 조금씩 만들던 가양주에서 이제는 대량생산을 하지만, 밑술을 만드는 일부터 여과 과정을 거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리는 것은 200년 전과 똑같다. 현재는 최옥림 대표의 맏딸이 제조 과정에 참여해 그 비법을 배우고 있다.

해남 진양주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 찾아와 그 유래와 술 빚는 과정을 듣고 시음도 한다. 전화 주문을 하는 경우도 많다. 부드러운 향과 맛에 반한 사람들은 반드시 해남 진양주를 다시 찾기 때문이다.

남도 여행 1번지로 꼽히는 해남에 와서 대흥사와 두륜산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신라 시대에 창건된 대흥사는 북원·남원·표충사·대광명전 구역으로 나뉘며, 전각이 30여 채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사찰이다. 우리나라에 다도를 정립한 것으로 알려진 초의선사가 머물다 입적해 ‘차 문화의 성지’로도 불린다.

임진왜란 때 승병 총수가 되어 왜적을 물리친 서산대사, 사명당, 뇌묵당 등 3선사를 기리는 사당 표충사가 함께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응진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보물 320호), 천불전(보물 1807호) 등 수많은 유물을 간직하여 천천히 둘러봐야 할 사찰이다.

두륜산케이블카를 타면 해남의 산과 바다를 품에 안아볼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약 8분 동안 해남의 들녘과 바다를 조망하고, 케이블카에서 내려 나무 데크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해발 638m 고계봉과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 서면 영암 월출산과 광주 무등산까지 조망할 수 있고, 강진과 완도, 진도 등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는데, 한반도의 서남쪽을 품에 안아보는 장쾌함이 느껴진다.

오는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우수영관광지 일원에서 명량대첩제가 열린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선 133척을 대파한 명량대첩을 기리는 축제로, 해전 재현 행사와 씻김굿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