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브랜드 이야기_19> 링컨 '아메리칸 럭셔리 카'의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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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0-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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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윤태구 기자=포드자동차의 고급 브랜드인 링컨은 1917년 탄생 이후 ‘스타일’과 ‘럭셔리’를 기반으로 한 ‘아메리칸 럭셔리 카(American Luxury Car)’의 상징이다.

1922년 2월 4일 헨리 포드(왼쪽 )이 헨리 리랜드(오른쪽)으로부터 링컨을 8백만 달러에 인수하고 있다

링컨 브랜드의 탄생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링컨을 처음 만든 이는 윌리엄 듀란트와 GM을 공동 설립한 헨리 리랜드. 자동차 부품회사로 캐딜락을 설립해 운영해 온 헨리 리랜드는 윌리엄 듀란트와 함께 GM그룹을 설립했다. 1915년 이들은 V8 엔진을 개발하여 실용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리랜드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 회사를 설립해 군수업체로 변신을 도모했으나 비행기 엔진 제작을 원하던 리랜드와 자동차만을 고집한 듀란트의 대립으로 결국 리랜드가 캐딜락을 떠나게 됐다.

이후 리랜드는 자동차 엔진을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링컨 대통령의 이름을 따 1917년 링컨 자동차 회사(Lincoln Motor Company)를 정식 설립했다. 리랜드는 1922년 포드에 링컨 브랜드가 편입된 후 줄곧 포드의 럭셔리카를 담당했다.


1920년대 링컨은 프리미어 아메리칸 럭셔리 카로 독자적인 입지를 굳혔다. 포드의 주문 제작 차량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은 아들 에드셀이 아버지 헨리 포드를 위해 만든 1922년 링컨 타운카다. 타운카라는 이름은 운전석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고 승객석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차체 디자인에서 따왔다. 링컨 타운카는 자동차를 교통수단이 아닌 고귀한 지위의 상징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토마스 에디슨, W.C 필즈, 허버트 후퍼와 같은 저명인사들도 링컨을 애용했다.


이후 링컨은 링컨의 대표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는 ‘콘티넨탈’을 선보였다. 링컨 콘티넨탈은 당시 에드셀 포드 CEO가 1938년 파리 여행 중 유럽차들을 보며 받았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드셀 포드는 처음에는 자신이 타고 다닐 차로 링컨 콘티넨탈을 제작했으나 이를 본 주위의 반응이 좋아 양산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1930년대에 들어선 링컨은 ‘제퍼’의 등장으로 비로소 재정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제퍼는 유선형을 띤,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첫 시작이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당시의 링컨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칭했으며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 역시 ‘탁월한 디자인의 차로 칭한 첫 번째 자동차 브랜드’로 링컨을 꼽았다


특히 루즈벨트, 트루먼 등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로 명성을 쌓아 온 링컨은 세계적인 명품 디자이너 구찌, 까르띠에, 지방시, 베르사체 등의 패션 트렌드를 도입하여 링컨에 명품 마크를 새겨 넣기도 했다.


최근 링컨은 첨단 테크놀로지와 드라이빙 퍼포먼스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프리미엄을 정의하는 새로운 중형 세단 올-뉴 링컨 MKZ를 공식 출시했다. 특히 올-뉴 링컨 MKZ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되는 모델로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과 함께,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겸비했으며, 현존하는 세단 가운데 세계 최대 크기의 개폐식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 등 경쟁 모델을 압도하는 편의 사양들을 장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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