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 전경.
성곡미술관이 지난 2009년부터 진행해온 ‘중견 중진작가 집중조명’ 프로그램으로 성곡미술관 올해의 마지막 전시다.
박천남 학예연구실장은 "'박병춘: 길을 묻다'전은 현대 한국화의 딜레마를 박병춘이라는 중견작가의 작업을 통해 반성적으로 돌아보고자 기획되었다"고 소개했다.
작가는 한국화의 침체를 넘어 죽음을 언급하는 미술계의 세류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현존 한국화가 중에서 가히 파격적이라 할 만큼 독보적이고 활발한 예술창작 실험을 선보여 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일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존재론적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담금질했다.
삶이 번잡하고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화첩을 들고 떠났다. 습관처럼 산을 찾았다.
‘내가 눈으로 본 것이 과연 풍경인가? 산수는 무엇인가? 그림은 무엇인가?’ 고해성사라도 하듯 자연에 의지해서 위안을 얻으려 했다.
산에 대한 관심은 ‘풍경’, ‘산수’, ‘여행’ 등의 연작으로 이어지며 스승, 산과 대지의 은혜를 다양한 방식과 형식, 표정으로 화폭에 재생됐다. ‘기억의 풍경’(2001), ‘흐린 풍경’(2003), ‘검은 풍경’(2004), ‘흐르는 풍경’(2006), ‘채집된 산수’(2007), ‘풍경’(2010), ‘여행’(2011), ‘낯선 풍경’(2013)이라는 타이틀로 끊임없이 전시를 열어왔다.
이후 작업은 벽(壁, wall)과 평면을 벗어나 장(場, field)에서의 입체, 설치작업으로 이어졌다. 라면산수, 고무산수, 칠판산수, 봉지산수 등으로 이어진 왕성한 입체실험은 ‘박병춘식 산수풍경’, ‘병춘준(峻)’으로 자리잡았다.
이번 전시는 어는 덧 중년에 접어든 작가가 지난 1988년 이후 최근까지 제작한 작품 중 66점을 엄선하여 소개한다.
박병천 길을 묻다전 1관 2전시실.
1관에서는 학창시절 작업으로부터 90년대말까지 제작한 작품 50점을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기성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의 작가로서, 가장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다.
주로 굵고 검은 먹으로 윤곽선과 화면을 조율하고 대담한 원색의 아크릴 물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가감 없이 쏟아 부었다. 목탄, 콘테, 파스텔 등과 같은 재료를 거침없이 도입했으며 주로 인간실존과 자아, 무의식, 영혼, 전쟁, 인간의 본능과 욕망, 욕정, 가족이 있는 풍경, 계절풍경, 삶의 풍경 등을 다루었다.
파노라마식으로 제작한 1300호 상당의 초대작으로부터 평균 200호에 달하는 대형화면도 이 시기 박병춘 작업의 한 특징으로 거침없는 과감한 호흡이 압권이다.
기억의 풍경-함피1,2013,한지에 아크릴,124x192cm
2관은 2000년대의 작업을 압축했다. 낯선 붉은 풍경이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인도의 ‘함피’라고 하는 독특한 화산지역에 존재하는 실제 지형이다. 몸과 맘으로 받아들인 생생한 감흥이 10개의 다양한 버전으로 펼쳐져 있다. 모두 미공개 최신작들이다.
마지막 전시공간인 3층에는 ‘흐르는 풍경’, ‘낯선 풍경’ 등과 ‘한반도 지형’ 시리즈 작업 등 지난 2000년대에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는 익숙한 대형작품 6점과 관련 화첩을 볼수 있다.
특히 강원도 영월을 중심으로 풀어낸 한반도 지형이 가지는 직선적이고 장중한 느낌을 만나볼 수 있다. 최신작 ‘함피’ 풍경에 비해 수직적인 면과 결이 강조된 화면이 특징이다.
전시의 백미는 거꾸로 심은 나무다. 최근 의정부로 이사한 작가는 수색시절, 자신의 작업철학을 응축한 단풍나무 한 그루를 2관 전시장 1층에 세웠다. 생나무를 뿌리채 뽑아 전시장 천정에 거꾸로 심었다. 나무의 생생한 내음이 전시장 가득 진동한다. 살고자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박천남 학예연구실장은 "박병춘의 이번 성곡에서의 반회고전은 의정부에로의 작업실 이전을 계기로 작가의 지난 작업을 현재적 시점에서 돌아보는 기회이자 인생 후반생을 앞두고 있는 작가의 미래적 작업지향을 작가와 관객 모두가 각기 가늠해보는 좋은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014년 1월 5일까지.(02) 737-7650
전시장 2관 1층 천정에거꾸로 매달린 단풍나무.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