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재홍 기자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3일 유례없는 발전을 이룬 한국경제가 세계 개도국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또 한국이 그만큼의 성장을 이룬만큼 책임감을 지녀야 하며 아프리카의 성공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그룹 한국사무소 개소식 참석차 방한한 김 총재는 이날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오찬간담회와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 같이 밝혔다.
※다음은 오찬간담회와 기자회견 일문일답 전문
미국에서의 성장 경험을 간단하게 이야기 해 주신다면?
- 미국에 갔을 때가 1964년이었고, 저는 달라스로 갔다. 당시 캐네디 총살 1년 뒤였는데, 소수 인종으로 미국에서 사는것은 쉽지 않았다. 인종차별도 겪었다. 아버지는 치과의사 어머니는 경기여고를 졸업했고 석사학위를 가져 저희는 빈곤층이 아니었음에도 그곳 에선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 아이오와주로 이사를 갔다. 그곳의 경험은 사실 유익했다. 안정적인 지역이었고 치안도 좋은 굉장히 점잖은 동네였다.
제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성장하는 동안 정체성의 문제를 겪었다. 저는 항상 한국이 제게 무슨 의미를 갖는지 의문을 가져왔다. 브라운대을 입학해 그곳에서 처음 다른 한국인 만나고 나서야 한국에 정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계 미국인 모두 저처럼 정체성 혼란을 겪는데 보통 한국에 어학연수를 오고 파티를 가는 등에서 끝날 고민을 저는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아야만 했다. 한국에 와서 저는 문화를 배우려 했으나 한국에 와서 보니 대한민국은 나를 필요로하지 않겠다고 느껴 1984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는 나는 누군가에 멈추지 않고 인류에서 제가 가진 사명은 무엇인가라고 생각했고, 1988년 올림픽 직후 제가 한국을 도울 수 있는 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아이티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저는 하얀 사람으로 불렸다. 미국에서 저는 백인이 아니었지만 아이티인이 봤을 때 저는 하얀 사람 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저는 부자였고 비행기를 타고 왔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인류에 가진 사명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잠시후 저는 용강 중학교에 강의를 가는데, 저는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제 부모 세대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경험한 세대다. 그러나 오늘 한국의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 한국 젊은이들은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보통 자식들이 결혼할 때 '잘 먹고 잘 살라'는 덕담을 하지만 그만으로 충분한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가진 사명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한국의 성공이 이렇게 크지 않았다면 책임은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유 때문에 한국이 가진 책임은 크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 등의 계획은 없는지?
- 북한은 현재 세계은행 회원국이 아니다. 반기문 총장과 저는 늘 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지만 저희가 정치적 돌파구 없이 어떤 노력을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저는 희망이 있다. 미래를 볼 때 통일의 길은 독일보다는 길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많은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서독이 동독에 많은 자원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IMF나 세계은행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정치적 돌파구가 전제돼야 한다. 미얀마의 경우나, 아프리카의 열악한 분쟁지역을 되돌아보면 선의를 갖고 돌아볼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오늘날 국제 사회는 언제든지 북한에 대한 노력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저희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있다. 정치적 돌파구가 이뤄진다면 저희같은 기관이 바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잇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은행은 잠재적으로 고속도로와 발전소 등을 위한 인프라펀드 조성계획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 정부에서 이와 관련해 긍정적 답을 얻었는지?
- 이미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한국 기업들과 같이 일해왔다. 그러나 인프라펀드의 경우 현재 개도국에 수십, 혹은 수조달러의 인프라 건설 니즈를 충족키 위해 조성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파이낸싱 여건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다자간 개도국 은행들과 '글로벌 인스트럭처 퍼실리티'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중인데 이 기구가 설립된다면 한국에서도 적극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한국정부가 개발원조를 늘리고 있고 2016년까지 30억달러까지 늘린다는 한국정부의 계획도 말씀하셨다. 이런 한국의 개발원조 규모에 대해 충분하다 보는지, 아니면 앞으로 이런 부분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 그것이 우리가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이 해외 원조 규모를 늘리고 있는데 이는 최근 해외 원조 규모를 줄이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소수의 경우다. 한국 외에 영국 정도가 있는데 저는 이를 매우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제가 한국에 온 또 다른 이유는 지금 현재 한국이 하는 투자를 통해 더 많은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의 개발경험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 스토리는 이는 아프리카를 포함한 정말 여러 나라에 영감을 주고 있다.정부 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 대외 개발 원조를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안이 있다.
김 총재는 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과 미국의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 제가 한국에서 태어났을 때 한국은 굉장히 빈곤했고, 부모님도 좋은 기회를 주고자 이민을 결정했다. 제가 지금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미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열정을 가진 분야에 참여하고 스스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국인으로서 가진 책임 뿐 아니라 전 세계 일원으로서 가진 책임의 성격도 생각을 해보라 말하고 싶다. 한국은 빈곤퇴치 뿐 아니라 의료나 교육에서 큰 방향을 줄 수 있는 입지에 와 있다. 지금 한국인들은 예전보다 더 많이 밖을 내다보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에서 긍정적 경험을 했고 이제는 전세계 나머지 국가에 대한 본인의 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북한 관련, 정치적 돌파구가 있을 때 외에 비정치적 수단으로 북을 개방하거나 적극적으로 접촉하는 계획 등은 없는지?
- 현재 북한은 세계은행 회원국이 아니다. 세계은행의 회원국이 되는 절차 중 하나가 IMF의 멤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관련 데이터에 저희가 접근할 수 있고, 그를 위해서는 정치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지금은 북한이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못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 세계은행의 회원국이 될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대부분의 이해당사국들이 북한의 정치적 상황 변화를 보고싶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감스럽지만 북한이 세계은행 회원국이 되기 전까지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한국기업쪽에서도 해외원조와 관련해 이야기가 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 개도국에서 이미 많은 한국 기업들과 긴밀하게 협력을 하고 있다. 이번 방한 목적 중 하나는 한국기업들이 기회가 있지만 모르는 상황등을 전하기 위함이다. 또 미얀마의 상황을 업데이트를 해드리고자 하는 목적도 있고, 북한이 개방할 경우에 대한 논의의 목적도 있다.
구체적인 건들은 많지만 보다 각 개도국들에게 보다 명확한 지원을 해주기 위해 지금 말씀 드릴 수는 없다.
다만 아프리카에 대해 한국 기업들이 과소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말씀드리고 싶다. 아프리카에서는 한국기업들이 다소 잊혀진 감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공격적 경영을 하고 아프리카 지도부와 많은 네트워크를 형성 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이런 좋은 기회를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되면 개도국 지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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