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중국역사> '대륙의 붉은 별' 마오쩌둥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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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2-2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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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한오종 기자 =
▲ 12월23일(월) - 2002년, 북경현대 쏘나타 출하

2002년 12월23일 북경현대자동차쏘나타 출하 행사


북경현대자동차(北京現代汽車)의 쏘나타(索纳塔) 승용차가 북경시 순이(順義)구의 북경현대 공장에서 정식으로 출하됐다.

북경현대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이후 최초로 승인한 자동차 생산 합작공장이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북경자동차투자유한공사(北京汽車投資有限公司)와 합작 2002년 10월 18일 ‘북경현대자동차유한공사’를 설립했다. 11월 18일부터 자동차 생산에 들어갔고 12월 10일부터 베이징의 판매 대리점에서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출하 행사에서 북경현대는 연말까지 2000대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2003년 5만대, 그리고 2005년 30만 대로 생산량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공장 부지면적은 9만㎡, 설비물의 중량은 1.1만톤, 공장자동화율은 80%, 공장설립을 위해 투자한 금액은 24억 위안이었다.

이날 출하식에는 정치국 상무위원 자칭린(賈慶林), 정치국 위원 겸 북경시 서기 류치(劉淇), 국가경제무역위 주임 리룽룽(李榮融), 대외경제무역합작부의 스광성(石廣生) 부장, 현대자동차 정몽구(鄭夢九) 회장 등이 참석하였다.


▲ 12월26일(목) - 1893년, ‘대륙의 붉은 별’ 마오쩌둥 탄생

1921년7월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한 청년 마오쩌둥


후난성(湖南省) 상탄현(湘潭縣) 샤오산(韶山)에서 ‘대륙의 붉은 별’ 마오쩌둥(毛澤東)이 태어났다.

마오쩌둥의 부친 마오순성(毛順生)은 전형적인 시골 부자로 농업에 대한 약간의 재주 외에 더 큰 부자가 되겠다는 계획이나 정치적 이상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꿈에서도 자신의 아들이 중국 최고의 지도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마오순성은 어린 마오쩌둥에게 2년간만 글을 가르치고 바로 생업에 뛰어들게 했다. 그는 2년 정도만 글을 배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글을 더 읽는 것은 양식을 축내고 집안의 노동력을 모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주경야독으로 글을 읽었고 아버지가 책을 읽지 못하게 하자 농사중 아버지가 담배를 피는 짧은 시간을 이용해 책을 꺼내읽기도 했다.

결국 16세에 다시 학교에 가게 되었다. 이후 <민립보(民立報)>의 열렬한 독자가 되어 반청론(反淸論) 등 혁명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1911년 신해혁명 가담을 시작으로 신민학회 조직, 후난 학생연합회 설립,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후난성 대표, 공산당 농민부장, 공농혁명위원회 주석 등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설립하고 국가주석 및 혁명군사위원회 주석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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