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던 10대 수출 품목이 몰락하고 있다. 10대 수출품목에 포함된 제조업 수출증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전체적인 산업구조에 균열이 생겼다.
정부는 제조업 부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긴급 점검을 추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산업정책이 겉돌면서 제조업 부진은 수출 하락과 더불어 지역경제 위축 등 도미노 현상이 시작됐다.
◆제조업에 편중된 10대 수출품…지역경제는 ‘휘청’
지난 30년간 10대 수출품은 제조업에 절대적 비중을 뒀다. 규모도 그렇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은 중요한 산업군이었다. 제조업이 휘청대자 한국 경제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도 제조업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제조업 부진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체질개선을 위해 ‘창조경제’를 화두로 꺼냈지만 제조업의 벽을 넘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준비도 되기 전에 제조업이 붕괴되면서 정부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달 주요 수출품목 수출증가율을 보면 선박류 -63.7%, 석유화학 -31.6%, 철강제품 -29.6%, 반도체 -7.0%, 자동차 -1.3%, 석유제품 -44.9%, 평판디스플레이 -9.7%, 자동차부품 -7.5% 등으로 전년동월대비 모두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았다. 이들 품목은 모두 10대 수출품목에 포함된 분야다.
특히 10대 수출품 1~4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선박류, 자동차, 석유제품의 하락은 정부가 쉽게 바라볼 부분이 아니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10대 수출품은 우리나라 수출의 59.6%를 차지한다. 상위권에 포진된 이들 4개 분야의 수출비중은 36.9%에 달한다. 한국 수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종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를 제외하고 3개 분야가 힘겨운 모습이다. 선박류와 석유제품은 당분간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매출이 급감했다. 조선업계는 수조원의 적자가 나면서 인력 감축에 돌입하는 등 연쇄적 악재가 겹쳤다.
대우조선은 향후 3년간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노조와 조율 중이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각가 2만6000여명, 1만4000여명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희망퇴직을 받을 계획이다.
한편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 지역경제의 70~80%를 좌우하는 거제시의 경우 이들 업체들이 영업손실 누적과 인력 구조조정, 수주 감소, 유가 하락으로 전통시장 매출 급감, 숙박·음식점 등 영업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뒤늦게 제조업 긴급점검…속 타는 업계들
제조업 부진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감지됐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건설, 투자와 더불어 부진할 것이라고 지목한 분야가 바로 제조업이었다. 이같은 전망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수출을 포함한 산업정책보다 내수에 힘을 쏟았다.
믿었던 수출이 올해 초부터 부진할 때도 ‘일시적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세계 경제가 개선되면 다시 상승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4분기에 접어들어도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3%대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일찌감치 내렸다. 제조업 부진 탓이라는 단서도 달았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대책도 없이 관망하다가 실적이 부진하자 모든 원인을 떠넘기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업계 불만이 고조되자 정부는 올해 말까지 제조업 긴급 점검에 나선다며 진화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동차, 철강,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10대 수출품을 중심으로 실태 조사와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에도 땜질식 처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어떤 대책을 내놔도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민간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제조업이 부진한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구조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만으로는 효과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무작정 제조업을 살리려는 대책보다 산업의 전체적인 방향을 다시 한번 재점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