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모석봉 기자 ]
아주경제 모석봉 기자 =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은 "과거사 정리는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부터 화해와 평화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며 지난 12일 열린 '진실과 정의를 향한 과거청산 결의대회' 기조연설에서 과거사 정리를 통한 화합을 강조했다.
'진실과 정의를 향한 과거청산 결의대회'와 '진화위법 개정안 토론회'가 지난 12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포럼진실과정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연구회, 민주평화국민연대, 진선미, 권은희, 김종대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사)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주관했다.
이날 '진실과 정의를 향한 과거청산 결의대회'는 조영선 변호사의 사회로 홍순권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의 개회사,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의 기조연설, 강창일, 소병훈, 설훈, 양승조, 국회의원의 격려사, 김광년 한국전쟁유족회 회장의 인사말, 결의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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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진화위법 개정안 토론회'는 이유정 변호사(포럼 진실과 정의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장완익 변호사의 '화해는 없었다' 발제 연설을 시작으로 진선미, 권은희, 김종대 국회의원, 안경원 행정자치부 사회통합지원과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은 '한국과거청산의 현재와 과제'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통해 "지난 10월 세종시에서 올린 합동추모제에서 유족들은 또 한 번 슬픔과 분노를 느껴야 했다"며 "진실화해위에서 발굴 수습한 유해들을 충북대학에 안치했다가 대학 측의 퇴거 압박에 밀려 다시 연기 납골당에 모시는 추모제였다. 발굴 수습했던 때가 언제인데 여태 그대로 방치하다가 또 다시 임시안치소를 찾아 전전해야 하나. 위정자들이 책무를 최소한이라도 이행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6·25전쟁 시기 일상생활을 하던 수많은 평범한 민간인들이 마구잡이로 끌려가 전국 도처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희생된 분들은 대부분이 학살된 그 자리에 억울한 모습 그대로 묻혀 방치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면서 "살아남은 가족들은 2차 3차 학살이 두려워 부모 형제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혹은 어디에서 희생됐는지 알 수도 없었으며, 수습하기 위해 수소문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게 비정한 세월이 60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전쟁시기 민간인 희생의 실상을 파악하고 오랜 시간 방치된 유해들을 뒤늦게나마 수습하기 위해 166곳의 실태를 조사했고, 그 가운데 우선 13곳을 선정해 2007년 3월부터 유해발굴을 시작해 13곳 1617구의 유해와 5600점의 유품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어 "발굴된 유해들은 충북대 안에 임시로 마련된 곳에 안치됐으며 2011년 7월까지 한시적으로 보존을 의뢰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국이 책무를 방기한 가운데 이러한 지경에 까지 내몰린 것"이라며 정부당국의 무책임성에 대해 질타했다.
안병욱 전 위원장은 "2005년에 출범해 2010년 종결된 진실화해위원회는 여러 뜻 깊은 임무를 수행했다. 위원회는 1만1174건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 4년여 활동기간에 8468건을 진실규명 했는데, 이 가운데 민간인 집단학살이 6761건, 이른바 적대세력인 인민군이나 좌익에 의한 희생이 1436건, 독재 정권하 인권침해가 246건 등"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실규명과 훼손된 명예회복을 위한 나름의 조치들도 취했다지만 이러한 성과들은 해결해야 할 과거사 문제에 견주어 볼 때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전쟁기 수십만 명, 많게는 100여만 명 가까이 희생됐다 한다. 그들 희생자 유족으로서 진실화해위에 신청한 분은 1만 명에도 이르지 못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전국에서 10개 시 군을 선정해 피해자 현황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주민들과의 면담을 통해 파악한 희생자는 해당지역에서 총 1만916명이었지만 그러나 그 지역에서 위원회에 신청한 조사대상은 겨우 490명에 불과했다. 대략 해당자의 5%정도가 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한 셈인것이다. 바꾸어 설명한다면 95% 정도는 지난 위원회 진상규명에서 비껴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많은 피해 유족들은 위원회의 과거사정리 활동을 알지 못했다가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신청하고자 했지만 이미 정해진 기한이 지나 신청할 수 없었다. 지난 진실화해위법에서는 신청기한을 1년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위원회 조사 활동이 소개되자 뒤늦게 소식을 접한 후 전국 각처에서 억울한 피해 사실과 그동안의 고통을 토로하면서 추가 신청을 요구했고 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는 위원회 연장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신청할 기회를 놓친 유족의 입장에서는 정책의 미비로 또 한 번 피해를 당한 처지에 놓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연장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김광년 한국전쟁유족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모석봉 기자 ]
안 전 위원장은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유족 중에는 신청했다가 오히려 또 다른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신청하지 못한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자기 가족이 6·25 때 희생되었다고 할 경우 혹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반정부 좌익 활동 때문에 살해당한 것으로 왜곡하거나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 진실화해위가 행한 진상규명으로도 국가의 잘못과 책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국가는 지금까지 불법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배상책임은 회피했다. 그에 따라 피해자들이 소송을 재기했고 사법부의 판결로 부분적으로 보 배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개별 소송에 따른 배·보상방식 대신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고 배·보상의 기준과 방식 등을 통일한 포괄적인 특별법을 제정해 일괄적으로 처리토록 해야 한다. 집단희생 사건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사건의 성격이 유사하고 희생 이유 등에서 공통점을 가지며, 유가족이 겪은 2차 피해의 유형도 대체로 유사해서 일괄적으로 처리가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사를 청산하는 일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 때문에 결코 손쉬운 작업이 아니다. 지체하면 할수록 과거사의 부담은 갈수록 더해지고 과거사를 올바르게 정리할 기회는 점점 더 멀어 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 전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한 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고,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과거청산인 것”이라며 “과거사 정리는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부터 화해와 평화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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