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법원이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내린 이번 판결은 현행법상 법정 최고형이다. 이에 따라 국회가 즉시 법률을 개정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5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 전 대표의 상고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존 리 전 옥시 대표에게는 하급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신현우 전 대표와 존 리 전 대표(현 구글코리아 사장) 등 옥시 관계자들은 2000년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제조·판매하면서 제품에 들어간 독성 화학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73명을 죽게 하는 등 181명의 피해자를 낸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등으로 기소됐다.
1심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살균제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충분한 검증을 해보지도 않고 막연히 살균제가 인체에 안전할 거라 믿었고, 심지어 제품 라벨에 '인체 안전', '아이에게도 안심'이란 거짓 표시까지 했다”며 신현우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옥시 살균제를 사용한 1, 2차 판정 피해자 중 대다수는 옥시가 마련한 배상안에 합의해 배상금을 받았고, 특별법이 제정돼 다수의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며 징역 6년으로 감형했다.
존 리 전 대표에 대해선 1, 2심 모두 “살균제가 유해한지에 대해 보고받지 못했고, '아이에게도 안심'이란 문구가 사용된 거짓 표시 광고도 알았거나 보고받지 못한 점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2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와 참사 피해자들의 모임인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대법원 앞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참사를 일으킨 살인기업·살인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존 리 전 대표의 무죄 선고는 검찰이 옥시의 외국인 임원 수사를 하지 않아 나온 결과로 너무나 부당하다”며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보장하는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를 통해 새롭게 진상이 규명되고 처벌이 뒤따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형법 제268조(업무상과실ㆍ중과실 치사상)는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자 등이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를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즉 감형됐다고 해도 이번에 확정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대법원은 법정 최고형을 선고한 것.
지난 1995년 6월 29일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라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보다 훨씬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지만 이준 전 삼풍그룹 회장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적용돼 징역 7년 6개월이 최종 선고됐다.
이에 대해 당시에도 “너무나 가벼운 형사처벌”이라는 비난 여론이 폭주했지만 20년이 넘게 지나도록 국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를 높이는 형법 개정을 하지 않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